2024년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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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친화적 본당 공동체 이야기] <9> 놀 시간이 없는 아이들

얘들아, 미사 참례하고 성당에서 놀다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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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프에 참가한 서울 무악재본당 어린이들이 게임하며 어울리고 있다.
  서울 무악재본당에 부임한 초기, 새롭게 구성된 청소년부 교사들은 교리보다는 레크리에이션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무엇을 하든 관계 형성이 기초가 돼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얼음땡`과 `대소동게임`, 하다못해 디비디비딥, 과일이름 대기 등 각종 게임으로 흥을 돋워도 아이들은 쉽게 친해지지 않았다. 교사들은 내게 "아이들이 놀 줄 모른다"고 하소연했다.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요즘 청소년들은 여러 명이 어울려 놀아본 경험이 없는 세대다.

 #깍두기 세대와 찐찌버거 세대
 다 같이 어울려 재미있게 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분위기를 느낄 줄 알아야 하고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예민한 감성도 있어야 한다. 그 옛날 골목에서 뛰어놀던 시절엔 `깍두기`라고 불리는 친구가 한 명씩 끼어 있었다. 나이가 어리거나 놀이에 잘 적응을 못하는 아이를 깍두기라고 불렀는데, 놀이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끼워줬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깍두기`야말로 기량이 떨어지는 사람마저 함부로 소외시키지 않는 배려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조금이라도 부족한 친구가 있으면 `찐찌버거`라며 놀리기 일쑤다. 찐찌버거는 `찐따, 찌질이, 버러지, 거지`의 줄임말이란다. 나보다 조금 모자란다 싶으면 순식간에 소외시켜 버리는 게 요즘 세대 풍속이니, 중1부터 고2까지 섞여 노는 것이 익숙할 리가 없다.

 오늘날 아이들 곁에는 어울릴 친구 대신, 컴퓨터 게임과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컴퓨터 게임을 하도록 허락한 것을 실컷 잘 놀게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계 앞에서 혼자 몰두하는 것이 정말로 노는 것일까.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에도 단계가 있는데, 먹고 자는 것, 노는 것과 같은 하위 욕구가 해결된 후에야 자아실현처럼 높은 단계의 욕구를 갈망하게 된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기본적 욕구인 `노는 것`을 잘 해소해야 더 큰 목표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들은 이 중요한 욕구를 간과한다. 나는 아이들이 잘 놀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해 왔다. 정서적 문제가 생기고, 자존감이 떨어지며, 집중력이 나빠져 머리가 좋은 아이들도 자기 주도학습을 못하게 된다고 말이다.

 #여행 이후 생긴 변화
 그러던 어느 날, 교사들과 좋은 기획을 하나 하게 됐다. 아이들과 함께 가는 여행이었다. 인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신도라는 아름다운 섬으로 아이들 몇명을 데리고 갔다. 특별한 프로그램 없이 쌀 한 봉지만 달랑 들고 그저 잘 놀겠다는 목적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출석률이 좋은 아이들에게 상을 주는 개념으로 기획한 여행이니 그렇지 않은 다른 아이들에게 교육적 효과도 있을 터였다.

 모든 여행이 그렇지만, 함께 가는 여행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동안 서먹했던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뛰어 놀고 같이 밥을 해먹다 보니 둘도 없이 친한 사이가 됐다.

 하지만 여행 효과는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여행 이후 아이들이 성당에 남아 놀기 시작한 것이다. 주일미사가 끝나면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슬쩍 사라지던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이젠 성당 마당이 떠나가라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깔깔거린다. 그 아이다운 소란스러움이 참 듣기 좋다.

 내친 김에 아이들을 목요일 평일미사에 초대했다. 간식을 사줄 테니, 목요일마다 미사에 참례하고 놀다 가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많은 청소년들이 목요일마다 교복 차림으로 성당을 찾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미사에 집중을 못하고 키득거리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아이도 있지만 썰렁하던 평일미사에 한층 활력이 생겼다.

 아이들은 함께 놀면서 타인과 공감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을 해방시킬 기회를 갖는다. 아이들이 잘 놀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장 좋은 장은 바로 성당이다. 어렸을 때부터 성당에 다니는 습관을 가진 아이는 집중력과 내적 갈망을 배우고 신앙과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아도 아이 정서와 관계성이 성장하니 얼마나 값진 일인가. 나는 오늘도 아이의 성공을 위해 성당을 활용하라고 부모들을 설득하고 있다.

(햇살청소년사목센터 소장, 서울 무악재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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