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병자의 날에 만난 사람 / 병원 봉사자 73세 김명자(리타)씨
▲ 김명자(왼쪽)씨가 병원에 입원한 러시아인 환자 타치아나씨에게 예수님과 성모님 상본을 선물하며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 이힘 기자
‘띠리리리~’ 갑작스럽게 휴대 전화 울리는 날이면 김명자(리타 73 의정부교구 원당본당)씨는 곧 병원으로 출동한다. 김씨는 2013년부터 1년 반째 경기도 고양 명지병원에서 환자들을 돕는 봉사자다. 김씨는 일주일에 3일에서 많게는 6일을 병원에 간다. 그가 돌보는 환자는 조금 특별하다. 우리 말을 전혀 모르는 데다 아프기 전까진 한국에 와본 적도 없는 러시아인들이다. 몇 해 전부터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로프스크 등지에 거주하는 암 환자들이 한국의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김씨는 의료인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따뜻한 위로와 정성 어린 기도 덕분에 마음의 안정을 찾아 건강해져 귀국한 환자들이 꽤 된다. 러시아 환자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천사 할머니’다. 그는 새 환자가 입원하면 러시아인 통역사 이리나(33)씨와 함께 찾아가 기도해 준다. 명동대성당 성모 상본을 선물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대부분 러시아 정교회 신자인 환자들은 그의 정성 어린 봉사와 위로에 감동한다. 김씨가 러시아식 고기만두인 ‘펠메니’를 만들어 가는 날이면 환자들은 고향에 온 것처럼 기뻐한다. 병원에서 먹자 파티가 열리는 날이다. 그래선지 김씨를 만났던 이들은 항암 치료차 다시 병원을 찾을 때마다 그를 포옹하며 반긴다. “암에 걸린 것도 괴로운데 혼자 외국에서 수술받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가족들이 곁에 있어도 두렵고 떨릴 텐데 길게는 두어 달을 혼자 지내니 얼마나 외롭겠어요. 말이 통하기를 하나….” 김씨가 러시아 환자의 ‘대모’가 된 것은 2013년 6월 40대 후반의 유방암 환자 올가를 만나면서부터. 10년째 신장 투석 중인 남편(강보인 미카엘)이 심장 스턴트 삽입 수술을 받으러 입원했는데 바로 옆 병실 환자가 올가였다. 김씨는 불교 신자인 올가를 위해 인근 절에 데려가고 요리를 대접하며 살갑게 대해줬다. 그러자 그동안 별 차도가 없던 병세가 급속도로 호전됐고 병실에서 짠 털신을 선물하고 행복한 얼굴로 귀국했다. 이후 올가는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김씨는 그때부터 러시아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19세 때 세례를 받은 김씨는 수도회 입회를 꿈꿨었다. 해외 선교사가 되려 했으나 하느님은 평범한 가정주부의 삶을 열어줬다. 결혼 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결혼 9년 만에 남편 공장이 화재로 잿더미가 돼 거리에 나앉았다. 남편과 세 자녀와의 관계가 원만치 않아 30년 가까이 마음고생도 했다. 한때 보험회사 영업소장 자리를 제안받았으나 직원들 봉급을 쥐어짤 자신이 없어 깨끗이 손을 털었다. 신앙인으로서 도저히 못 할 짓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보험회사를 그만둔 뒤부터 남편 사업이 술술 풀렸다. 김씨는 “인생의 유일한 버팀목은 신앙이었다”고 고백했다. 신자가 된 이후부터 매일 새벽 미사를 봉헌하고 묵주기도를 20단씩 바쳐왔다. “러시아 환자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주님께 대한 믿음이 더욱 굳건해졌어요. 오히려 제가 환자들에게 감사하지요.” 인터뷰를 마칠 때쯤 그를 찾는 휴대전화 벨 소리가 들렸다. 그의 눈빛이 다시 ‘반짝’ 거렸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