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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년 전 감격의 떨림 그대로 오늘도 “예수 부활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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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 4월 5일 예수 부활 대축일 조선 교회 최초의 미사 봉헌

▲ 220년 전 조선 교회의 첫 미사이자 부활 대축일 미사가 봉헌된 서울 북촌 계동 근처에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당시 “알렐루야”를 외친 선조들의 순교 피가 한국교회의 씨앗이 됐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알렐루야!”

정확히 220년 전인 1795년 4월 5일. 예수 부활 대축일이었던 그 날은 조선 교회에 역사적인 날이다. 사제 없이 신앙을 이어가던 조선 교회 공동체가 첫 미사이자 첫 부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한 것이다. 그날 미사 모습은 어땠을까.

1795년 4월 5일 한양 북촌 계동 최인길은 최근 새로 도배한 방에서 주문모 신부의 지시대로 정성껏 마련한 제대 위 초에 속절없이 떨리는 손을 다잡고 불을 밝혔다. 그리고 주 신부에게 속삭이듯 낮은 소리로 말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주 신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 신부가 방에 들어서자 숨죽이고 있던 신자들은 상기된 얼굴로 그를 맞았다. 십자가가 놓인 제대 앞에 주 신부가 서자 신자들은 모두 무릎을 꿇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조선 땅에서 최초로 봉헌되는 미사의 시작을 알리는 성호경이었다. 십자성호를 긋는 신자들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닌 감격에서 오는 떨림이었다. 가슴이 벅찬 것은 주 신부도 마찬가지였다. 비밀스레 준비한 조선의 첫 미사는 ‘예수 부활 대축일’ 미사. 신자들이 서투른 발음으로 외친 ‘알렐루야’가 주 신부에게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까닭이었다.

신자들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한 빵과 포도주를 받아 모셨다. 하지만 누구도 쉽사리 삼키지 못했다. 목이 메었다. ‘되살아나신 천주의 아드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구나. 그래. 나는 두려울 것이 없다.’ 뜨거운 눈물이 이들의 볼을 타고 흘렀다.

이날 미사는 그러나 박해의 도화선이 됐다. 신입 신자였던 한영익이 이 사실을 밀고한 것이다. 곧바로 체포령이 내려지고 주문모 신부는 피신했지만 최인길과 윤유일 지황이 체포돼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1795년 을묘년에 일어난 박해라고 해서 ‘을묘박해’라고 부른다.

그 후 1801년 신유박해가 시작되면서 주문모 신부를 비롯한 다른 지도자급 신자들이 대거 체포돼 목숨을 잃었고 박해의 칼날은 수많은 신앙 선조들의 목숨을 앗아가면서 이 땅을 순교의 피로 물들였다. 이들이 흘린 순교의 피는 오늘날 530만 신자 공동체로 성장한 한국 천주교회의 밑거름이 됐다.

첫 부활 대축일 미사가 봉헌된 지 꼭 220년이 되는 2015년 4월 5일 이 땅에는 이제 전국에서 1600개가 훨씬 넘는 성당에서 부활 대축일 미사가 거행된다. 첫 미사가 봉헌된 북촌 계동 근처에 지어진 가회동성당에서도 부활의 노래가 울려퍼진다. 주문모(야고보) 신부와 최인길(마티아)을 비롯해 220년 전 오늘 첫 부활 대축일 미사에 참례했던 우리의 조상들은 천상에서 우리와 함께 부활을 노래한다.

“알렐루야! 예수 부활하셨도다!”

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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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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