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인 권향자(빅토리아)씨 고단한 삶이지만 더 어려운 이웃 위해 기도·나눔 실천
[ ▲ 23년간 떡볶이를 팔아온 권향자씨. 그는 자비를 베푸는 요즘의 삶이 더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권씨는 틈나는 대로 그날 복음을 필사하고 시간에 맞춰 시간전례를 바친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 7).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맞아 일상에서 자비를 실천하며 사는 이웃을 만났다. 서울 수유역 4번 출구 앞에서 떡볶이를 파는 권향자(빅토리아 65 서울 번동본당)씨다.
3.3㎡(1평)가 채 되지 않는 작은 컨테이너 노점. 어묵이 익어가는 통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찜통엔 순대가 가득하고 하얀 떡볶이 떡은 보글보글 끓는 빨간 국물 속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떡볶이 앞에 가지런히 놓인 각종 튀김과 김밥. 지나가던 이들의 발길이 눈길이 머물 수밖에 없다.
노숙인에게도 “어서 오세요”
벌써 몇 달째 매일 오는 노숙인이 오늘도 어김없이 들렀다. “어서 오세요. 뭐 드릴까요?” 권씨는 다른 손님들과 똑같이 노숙인을 맞았다. 기운 넘치는 목소리와 환한 미소도 다르지 않다. 조용히 김밥 한 줄과 어묵을 먹은 노숙인은 가볍게 목례하고 돈을 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저도 노숙하는 분들 오는 게 싫었어요. 냄새도 나고 하니 다른 손님들이 안 오시거든요. 예전엔 먹을 걸 봉지에 싸뒀다가 오면 건네주고 얼른 가시게 했는데 요샌 안 그래요. 뭐 드실 거냐고 물어보고 드시고 싶은 거 천천히 드시다 가라 해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이야기하는 권씨는 “이게 다 기도의 은총을 체험한 덕분”이라고 했다. 23년째 같은 자리에서 떡볶이를 팔아 온 권씨는 불안정한 남편 벌이로는 아들 둘 키우며 살기가 힘들어 노점을 시작했다. 아침 8시 45분쯤부터 음식을 팔기 시작해 밤 12시에 하루를 마치는 고단한 나날이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아등바등 살아왔다.
“저도 먹고살기 힘든데 다른 사람들을 돌볼 여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2년 전 평화방송 라디오에 수녀님과 청취자들이 함께 기도해 주는 ‘기도의 오솔길’이란 프로그램이 생겼더라고요. 노점 자리 문제 집 이사 문제로 한창 힘들 때라 잘 해결되게 해달라고 사연을 보냈는데 웬 걸요. 생각지도 못하게 일이 풀리더라고요. 그때 정말 크게 깨달았어요. 함께 나누는 기도의 힘이 이렇게 크구나. 나도 이렇게 기도로 주님께 받았으니 다른 사람들 위해 더 많이 기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베풀며 살아야겠다 생각했죠.”
청원이 감사 기도로
그때부터 권씨의 기도가 달라졌다. 청원 기도는 감사 기도가 됐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한 기도는 기도의 오솔길 가족들 노숙인 등 주변에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기도로 바뀌었다. 밤늦게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거나 주정하는 손님에게도 너그러워졌다. 매일 첫 매출을 한 달씩 모아 서울역 쪽방촌 주민들을 돕는 인보성체수도회에 기부하기 시작했고 적금을 타고 받은 몇 푼 안 되는 이자도 내 돈이 아니라는 생각에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꺼이 쓰게 됐다.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신난다는 권씨는 “경기도 안 좋고 장사가 예전처럼 잘되는 것도 아닌데 요즘이 더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