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동방교회 4대 교부 중 한 사람으로, 무려 5번에 걸쳐 주교직이 박탈되고 추방당하면서도 이단과 싸워 정통교리를 확립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타나시우스는 어려서부터 철학과 신학 교육을 받았다. 318년 부제품을 받은 뒤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데르 주교의 비서 자격으로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했다. 그는 당시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아리우스 이단의 주장을 접하고 정통 신앙교리 정립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328년, 그는 젊은 나이에 알렉산데르 주교의 뒤를 이어 주교가 됐다. 아리우스주의, 그리고 아리우스주의를 지지한 멜레티우스의 주장을 이단으로 간주, 평생에 걸쳐 이단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아리우스의 주장이 이단으로 단죄됐지만, 당시 제국의 동방 지역에서는 아리우스주의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특히 당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와 그 뒤를 이은 황제들은 대체로 아리우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 때문에 아타나시우스는 5번이나 주교직을 박탈당하고 망명자로 쫓기는 곤욕을 치렀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리우스주의를 이단으로 단죄하고 주창자들을 파문에 처했지만, 이후에도 근 50여 년 동안 아리우스주의는 동방 지역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발휘했다. 아타나시우스 성인이 펼친 이단과의 투쟁은 그러한 교회의 혼란 속에서 수행된 위대한 사도직이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