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사도’라고 불리는 보니파시우스 성인은 중세 초기 독일 지역의 선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영국 크레디톤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부터 베네딕도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또한 너슬링의 베네딕도회에 입회해 30세에 사제품을 받았다.
성인은 718년 로마로 가서 그레고리우스 2세 교황으로부터 라인강 동쪽의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라는 소명을 받고 선교사의 길을 떠난다. 이후 3년간 프리슬란트에서 놀라운 선교의 결실을 거둔다. 이에 교황은 그를 로마로 불러 주교로 서품하고, 독일 선교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독일의 모든 수도자들과 정부 관리들에게 보내는 추천서를 작성해줬다. 이는 특별히 당시 프랑크 왕국의 재상이었던 카를 마르텔의 보호를 받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성인은 이교도의 세력이 가장 왕성했던 헤센 지역 선교에 나서 수많은 개종자들을 탄생시켰다. 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에 수도원을 세우고, 영국의 수도자들을 독일에 선교사로 파견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754년 마인츠 대교구장직을 사임한 성인은 여전히 이교도들의 관습에 빠져 있는 프리슬란트를 재건하는데 온 힘을 다했다. 이 과정에서 성인은 이교도들의 습격을 받아 살해됐다. 당시 성인은 개종자들에게 견진성사를 주기 위해 준비하던 중이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