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김혜명(모니카, 80)씨가 12일 경남 거창군 자신의 집에서 한지에 붓으로 성경을 필사하고 있다. 김씨는 신구약 성경 전체를 열다섯 번이나 완필했다. |
“성경 필사에 푹 빠져 다니던 화실도 그만뒀어요.”
15년째 성경을 필사하고 있는 김혜명(모니카, 80, 마산교구 안의선교본당)씨 이야기다. 김씨는 신구약 성경 전체를 열다섯 번이나 완필했다. 그중 두 번은 한지에 붓으로 썼다. 12일 경남 거창에 사는 김씨를 만났다. 그는 열여섯 번째 성경 베껴 쓰기에 한창이었다. 꾹꾹 눌러쓴 필사 공책 수십 권과 약 60㎝ 높이로 쌓여있는 한지 필사본이 집안 곳곳에 놓여 있었다.
김씨가 매일 성경을 쓰는 자리는 거창 성산이 보이는 부엌 창가 근처다. 식탁 한 편에 늘 성경과 노트를 펼쳐두고 복음 말씀에 빠져든다. 김씨에게는 일상이 된 모습이다. 그는 “5분만 틈이 나도 성경을 쓴다”고 말한다.
좋아하던 화실도 그만두고
그는 우연한 계기로 펜을 들었다. 일찍이 성경 필사를 마친 시누이가 성경 쓰는 재미에 날을 샜다며 추천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작한 성경 필사는 김씨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됐다. 오래도록 즐기던 한국화 그리기와 봉헌 초에 꽃을 그리는 작업도 성경 쓰기에 밀렸다. 그림 앞에 앉아서도 성경 필사만 떠올랐다. 그날로 화실을 그만두고 성경 앞에 앉았다.
오래도록 필사하다 보면 팔이 아플 법도 한데, 그는 팔이 전혀 아프지 않다고 말한다. “성경을 베껴 쓴다고 하면 팔목이 아프거나 눈이 피로하지 않으냐고들 물어요. 그런데 온종일 앉아서 써도 전혀 아프지 않아요. 성경 쓰는 재미가 더 크다 보니 아픔을 못 느끼는 건지…. 오로지 말씀에만 집중하게 되죠.”
성경 말씀은 날마다 새롭다. 여러 번 읽고 썼어도 매번 느껴지는 울림이 다르다. 그는 성경을 쓰면서 ‘성령’이 함께하신다는 걸 느낀다고 말한다. “성경을 쓰면 하느님의 은혜를 받는다는 말을 실감해요. 신약을 쓸 때는 예수님이 제자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가 온몸으로 느껴지고, 구약을 쓰면서는 하느님과 마주앉아 대화하는 기분이죠. 성경 필사를 시작하고 미사도 재밌어졌어요. 그냥 지나쳤던 독서나 강론 말씀도 오래 기억나더라고요.”
“네 곳간에 자선을 쌓아 두어라. 그것이 너를 온갖 재앙에서 구해 주리라.” 그가 좋아하는 집회서 29장 12절 말씀이다. 그에게 성경 말씀은 삶의 지표다. 곳간에 자선을 쌓듯 본당 활동에도 늘 앞장선다. 10년간 레지오 활동을 했고, 6년은 단장으로 지냈다. 성당에서 사용하는 수건을 세탁하고 화장실에 휴지를 교체하는 세심한 부분도 도맡아 한다.
성경 필사는 ‘은총’
김씨에게는 성경 필사가 ‘신앙의 신비’다. 힘닿는 데까지 성경 필사를 하고 싶다고 한다.
“처음 성경 필사를 시작할 땐 이렇게 수차례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성경 쓰기는 멈출 수 없을 정도로 재밌어요. 나이가 들어서 이전보다 쓰는 속도가 느려지긴 했지만, 말씀을 곱씹으며 계속 성경을 쓰고 싶어요. 성경 필사는 제게 ‘은총’이거든요.” 글·사진=전은지 기자
eunz@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