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은 시골 마을 주임신부로서 평생 혼신을 다해 신자들의 영혼을 돌봄으로써 사제의 모범이 됐다. 무려 42년 동안 지극히 단순하지만 깊은 성덕의 삶을 보여준 그는 지금까지도 예수 성심을 닮은 참 사제로 존경을 받고 있다.
그는 프랑스 혁명의 거센 물결이 휩쓸어 교회가 박해를 받던 1786년 리옹 인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소의 꿈을 키워 신학교에 입학, 열 번이 넘는 낙제 끝에 간신히 사제품을 받은 그는 첫 임지인 아르스에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에게 모든 것을 의탁한 후, 그는 오직 사람들의 영혼을 돌보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감자와 거친 빵을 먹고 성당과 고해소에서 종일을 보내고 짬이 날 때마다 가정과 환자 방문을 했다. 영혼의 구원에 온 힘을 기울이는 그를 보며 주민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비안네 신부는 특히 고해성사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는 죄를 뉘우치는 신자들과 함께 고해소 안에서 눈물을 흘리고 죄로 인한 영혼의 고통을 함께 나눴다. 변화된 마을의 모습에 순례자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의 고해성사를 위해 그는 매일 18시간을 고해소에 머물러야 했다.
비오 10세 교황은 1905년 그를 시복하면서 본당 사제의 모범으로 선언했다. 20년 뒤인 1925년에는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