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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바디 국가대표 김경태(바르나바, 왼쪽)·이장군(미카엘) 선수와 사진을 찍은 임의준 신부.
임의준 신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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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듬체조 동메달리스트 임세은(로사) 선수. 임의준 신부 제공 |
나는 ‘스포츠 선수’와 ‘스포츠 분야’를 담당하는 신부다. 그런데 아직도 경기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지 않다. 여러 가지 핑계를 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5년이 다 되도록 바뀌지 않는 것은 경기장을 향하는 마음이 늘 편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출입이 어려워서’라는 핑계를 대고 경기장에 가지 않으려다가, 몇몇 선수에게 애정이 어린 핀잔과 무심하게 쥐여주는 티켓을 들고 경기장에 끌려가듯 간 적도 있다.
“얼마나 두근거리고 좋아? 경기장에 갈 수 있고 현장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지인들은 늘 부러워하지만, 경기장에서 선수를 지켜보는 게 얼마나 조마조마하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지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경기가 끝나고 전광판에 나타나는 순위가 마치 내 기도의 결과를 표시하는 것 같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도 몇몇 경기에 ‘불려’갔다. “신부님이 오셔서 응원해 주시면 힘이 날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가 신부님 꼭 오시라고 하셨어요”라는 말 때문에 경기장에 갔으니 불려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그때마다 나는 경기장으로 향하면서 계속 고민한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내가 어디에서 기도하든지 들어주시지 않을까? 꼭 경기장에 있어야 하는가?’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카바디’ 경기가 끝났다. 카바디는 고대 인도의 병법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격투기와 술래잡기를 결합한 듯한 경기다. 모두 꿈꾸던 금메달의 꿈은 다음으로 미루게 됐다. 가슴이 철렁한다. 또 기도의 결과를 마주 대했다. 기도가 부족한 것일까? 그렇다면 금메달을 딴 나라는 우리보다 더 많이 기도한 걸까?
순간 신자 선수와 눈이 마주쳤다. 선수가 다가왔다. 마음속으로 할 말을 고민하다가 ‘미안하다. 내가 많이 부족했다’고 말해 주려는 순간 선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신부님, 좋은 모습 못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선수의 이 말에 난 눈물을 글썽이며 “아니다 잘했다”고 대답했다.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천주교 신자 선수들의 성적이 썩 좋지 않았다. 판정 때문에 속상함의 눈물을 훔친 선수도 있었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은 선수도 있었다. 그래도 하나같이 경기를 마치고 선수촌에 돌아온 선수들이 보내오는 연락은 똑같았다.
‘신부님이 기도를 많이 해주셨는데 아쉬운 결과가 나왔어요. 그래도 챙겨주시러 오셔서 아주 좋아요. 다음에도 같이 가요.’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 특히 많이 챙기고 사랑하는 우리 선수들이 실패와 좌절을 맛보질 않기를 간절히 원하고 기도한다. 솔직히 그 결과가 나는 너무 아프다. 그래도 우리 선수들은 다음을 이야기한다.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신앙은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신앙은 한 번의 결과가 아니라 다음을 생각하게 하고, 불확실하고 불안하지만, 그 속에서 다시금 하느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간절한 희망이라 생각한다. 지금 내 앞에서 그동안 먹지 못해 꿈속에서만 그리던 치킨을 마구마구 먹는 선수들을 보면서 ‘성숙한 신자와 부족한 사목자’의 조합이긴 하지만, 서로가 너무나도 소중한 우리이기에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번 아시안 게임 최고의 성적은 바로 ‘우리 공동체’였다.
임의준 신부(서울대교구 직장사목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