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이 모든 일들은 일본에 있는 가톨릭 선교사에게 매우 기쁜 일입니다. 공산주의가 무신론을 고수하는 한, 투쟁해야 하는 임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이 일본에 진정한 그리스도교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데 기여한다면, 그것은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에게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선각자들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이데올로기 대립이 불가피하다고 이야기하는데, 만일 그때가 반드시 온다면, 우방을 갖는 것이 유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글은 ‘전후(戰後) 일본에서의 교회의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1947년 2월, 미국 가톨릭복지협의회(National Catholic Welfare Conference) 간행물에 실린 기고문의 결론이다. 미국인 선교사가 쓴 이 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상황과 공산주의, 그리고 미·일 관계 등에 대한 미국 가톨릭교회의 시각을 보여주는데, 특히 전(全)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바티칸과 ‘크레믈린’의 갈등도 언급하고 있다.
이 글은 특히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일본이 공산주의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미국과 가톨릭교회의 역할을 강조한다. 신자가 아닌 일본인들도 가톨릭에 관심을 가지고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데 협력하고 있으며, 불교 성직자들도 반공주의 연합전선에 동참하고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도 전하고 있다. 일본 학생들의 교육에 대해서도 이전과는 달리, 새로운 일본의 ‘민주주의’ 정부가 미국 가톨릭교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교회 언론을 통해서이지만 일종의 ‘정세 보고서’ 역할을 하는 이 기고문은 20세기 냉전의 전선이 고착되는 시기에 일본 사회의 ‘친미 반공’ 분위기를 미국에 소개한 것이다.
미·중 갈등과 북핵 문제, 끝날 기미가 없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우리를 또다시 냉전적 대결의 전선으로 이끌고 있다. 안보를 위해서 ‘친구’와 ‘적’을 분명히 구분하라고 강요하는 오래된 대결이 이 순간 소환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세기 냉전적 대립의 가운데서 분단과 전쟁의 소용돌이를 겪어야 했던 우리 교회는 평화를 위한 중재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신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이 땅의 교회는 지난 역사가 주는 교훈을 성찰해야 한다. 갈라진 것들이 화해하는 복음, 그리스도의 평화를 선포하는 교회를 위해 함께 기도하자.
강주석 베드로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