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20대 여성이 “살인이 하고 싶었다”라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던 또래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청년의 심리를 분석하는 가운데, 그가 고등학교 졸업 후 5년간 무직으로 지냈고, 휴대전화에도 다른 이들과 연락한 흔적이나 저장된 친구 이름 하나 없을 정도로 사회와 단절되어 있었던 ‘은둔형 외톨이’ 청년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세상과는 철저히 고립된 상태에서 인터넷으로 ‘살인’을 검색하고 범죄 소설과 프로그램을 찾아보던 그는, 끝내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고야 말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 가까운 지인들과 고전문학 작품을 읽고 대화하는 독서모임을 하는데, 마침 이번 달 주제 책이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 「죄와 벌」이었습니다. 법학도였던 주인공 청년이 불의한 부자라고 판단했던 전당포 노파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다가, 노파의 여동생까지 2명을 살해한 이후에 벌어지는 내용을 담은 소설입니다.
주인공이 계획하는 살인 동기의 도덕적 문제 제기와 범죄 이후 불안과 두려움의 심리묘사가 탁월한 이 소설을 두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한 사람이 주인공 라스콜니코프가 위 사건의 청년과 겹쳐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라스콜니코프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마치 관처럼 비좁은 방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머릿속으로 구상하던 살인을 저질렀는데, 실제 사건 속 외톨이 청년이 지내온 삶이 그 관처럼 비좁은 방에 고립된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견이었습니다. 비참한 처지에 놓였던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가 살인사건으로 시작되듯, 현실 속 외톨이 청년의 존재가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폭력적 방식으로 세상에서 드러나게 된 점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은둔형 외톨이’는 일반적으로 집안, 방안 등 한정적 공간에서 외부 활동이나 사회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상태가 3개월 이상 지속되는 사람을 뜻합니다. 지난해 서울시에서 실태조사 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에서만 약 13만 명의 청년이 집에서 나오지 않고 고립·은둔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고, 이를 전국으로 확대하면 61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이미 일본에서는 1970년대부터 나타난 현상으로, ‘히키코모리’라고 불리는 이런 이들이 1990년대 초 일본의 경제침체가 시작되면서 더욱 급증하였고, 청년 히키코모리가 중년, 노년이 되어서도 계속 고립된 상태로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 현상은 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거나 앞둔 청소년, 청년층에서 발견되는데, 그 원인으로 극심한 경쟁 사회에 대한 두려움, 학교나 회사에서 느끼는 고립감 등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성적으로 줄 세우며 차별을 정당화하는 경쟁 사회, 다름을 다양함이 아닌 틀림으로 여기며 따돌리고 고립시키는 문화가 팽배한 한국 사회는 점점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날 것이 자명합니다. 이런 심각한 현실을 보며, 우리 신앙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지난달 연구소 월례 줌 세미나에서는 노년기의 영성에 관한 주제를 다루었는데, 나눔 때 한 참가자가 노인들이 지닌 경험과 지혜, 시간과 물질을 우리 시대 어려운 청년들과 나눌 수 있도록 교회가 이끌어주면 좋겠다면서, 경제적 관계적 어려움을 겪는 1인 가구 청년들을 위해 본당마다 청년 공동주택을 하나씩 꾸려보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나누었습니다.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날 발제자였던 성공회 사제가 실제로 현장에서 시도하는 청년 공동주택 ‘터무늬 있는 집’ 활동에 영감을 받은 제안이었습니다. 교회가, 신자들이 가진 빵을 쪼개어 고립되기 쉬운 청년들과 나눔을 하자는 이 제안을, 성체성사의 삶을 생각하는 이 주간에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