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간 안에서 살아갑니다. 1일 24시간으로 정해진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하루의 일상을 보내고 그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감정을 경험합니다. 당연히 세상 모든 이들에게는 똑같은 시간이 주어지기 마련이고, 자신의 상황에 맞게 쪼개거나 나누어 그 시간의 칸들을 켜켜이 채워가게 됩니다. 잠을 자고 밥을 먹거나 학교 또는 회사 그리고 가정 등등에서 머무는 사이 우리는 정해진 시간의 틀에 알맞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행동을 이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현대문명의 한복판인 대도시에서 살아갈 때와 한적한 시골에서 유유자적 지낼 때의 차이 또한 모르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다양한 시간의 밀도를 느끼면서 우리는 삶을 살아 채워가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다를 것 없이 같고 그 시간의 밀도 높은 가치는 자신에 의해서 형성이 됩니다. 마주하고 싶거나 마주하기 싫은 상황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누군가와 마주하게 될 때가 있으면 안부처럼 늘 묻곤 합니다. ‘오늘 하루 당신은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라고 말입니다. 당신의 오늘 하루가 어떠냐는 질문은 사실상 당신에 대한 존재가치를 내가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형태와 질량의 차이를 떠나 당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자신이라는 존재성과 스스로 닿으면서 나타나는 것이며 결국 그 경험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아차리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힘내어 살아내자는 뜻입니다.
언젠가 낯선 이국 땅 너른 초원에서 이름 모를 들꽃과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나뭇가지와 무성한 잎새들 틈 사이로 비집고 내린 햇살을 한가득 받고 있던 그 들꽃의 자태는 그지없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때 느낌은 아마도 위로였던 듯싶습니다. 화려하지 않은 꽃망울과 얄팍한 잎새들을 모두 세우고 당당하게 뿌리를 내리고 선 들꽃을 보며 한없는 위로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즈음 세상살이의 번잡함에 겨워 홀로 세상을 떠돌고 있던 때였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그렇게 가만히 서서 진득하게 들풀을 바라보았습니다. 내 성정이 고요해서가 아니라 들꽃 자체의 존재성이 나에게 준 선물 같았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하찮은 사물이란 없다는 작은 깨달음이 뒤를 따랐습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의 한 단면에서 겪은 경험이지만 지금도 그 시간의 밀도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10여 년 전 한 대학병원에서 말기에 접어든 유방암 환우들과 사진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때도 떠오릅니다. 근처 숲으로 함께 이동한 환우들에게 가만히 눈을 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때마침 환하고 넉넉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 그리고 새들의 작은 지저귐들이 환우들의 어깨를 깊이 감싸주었습니다. 이어 눈을 뜬 환우들에게 지금 이순간 가장 아름답게 생각되는 것들을 사진으로 찍어보라고 권해주었습니다. 대략 30분 남짓했던 그 시간 안에서 환우들은 햇살보다 더 환하게 웃거나 마구 얘기꽃을 피워가며 자기만의 가장 아름다운 사물들과 귀하게 마주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 생명이 내일 끝날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환우들은 그 시간 동안 자신을 위로하는 시간을 스스로 이룬 것입니다. 당시 환우들의 곁에서 지켜봤던 그 순간들은 내게 시간의 밀도감을 다시 한번 새기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글의 끝에 서서 참 귀한 사람인 당신에게도 여쭈어봅니다.
“오늘 하루 어떠신가요?”
임종진 스테파노(사진치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