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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시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 김경훈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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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김준태)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먼 훗날에 무엇을 셀까 몰라.

5~6월 초여름 더위가 시작될 무렵, 보리가 익어갈 때쯤, 감나무는 짙고 두터운 잎사귀 속에 황백색 감꽃을 탐스럽게 달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마당에 떨어진 감꽃을 주워 먹던 기억을 가진 어르신들 계시지요? 그냥 먹으면 떫은맛이 나지만, 그나마 시들시들하게 말려서 먹으면 떫은맛과 단맛이 어우러진다고 합니다. 맛있어서 주워 먹었다기보다는 딱히 먹을 만한 것이 없기에 감꽃을 먹었다고 하시는 어르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별 모양의 꽤 단단한 꽃송이를 실로 꿴 감꽃 목걸이, 반지와 팔찌 만들어 즐겁게 놀았다고도 하시던데, 그런가요? 솔직히 저는 그런 체험이 없을 만큼 아직 어려서(?) 잘 모릅니다.

어쨌거나 어릴 적 떨어지는 감꽃을 세야 하는 배고픈 시절을 지나, 병사들 머리로 표현되는 죽음을 마주해야 했던 험난한 시절…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이런저런 고민과 고생을 했던 시간을 견뎌냈습니다.(이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우리가 함께 겪은 지난 팬데믹 시기도 만만치 않았지요?) 그러나 지금은 기성세대가 되어, 돈을 세며 사랑과 평화로움을 갈구하며 삽니다. 또한 삶의 어려움으로 인해 죽은 병사 머리를 세듯이, 또는 누군가의 배고픔과 죽음의 소식을 들으면서도 천연덕스럽게 돈을 세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게 욕심에 매여 진정한 자유를 잃은 줄도 모르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평생을 자신을 위해서 셈하며 살다가, 먼 훗날 무엇을 셀까 모르겠다는 시인의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 봅니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 그것이 전부인 듯 살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러다가 과연 그 먼 훗날, 온전히 맨몸으로, 영으로 하느님 앞에 섰을 때는, 과연 무엇을 셀 수 있을까? 무엇을 하느님 앞에 셈하여 내놓을 수 있을까? 후회 가운데 선택하지 못한 선한 일을 셀까? 아니면 그래도 자랑스럽게 힘들지만 버텨 살아내었던 삶의 뿌듯함과 희생을 셀 수 있을까?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비유나 되물음 없이 즉답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34-40)

다시금 우리 마음과 삶의 태도를 살펴야 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하느님 백성인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사랑, 이웃과의 나눔, 때로는 희생을 동반하는 구체적인 선행입니다. 하느님 사랑에 감사드리고 이웃에 대한 나눔을 실천하면서 영적 배고픔, 죽을 것 같은 삶의 어려움, 세상에 무관심한 듯 자신만을 위한 안락함 추구를 이겨내도록, 그래서 진정 하느님 자녀로서, 예수님 제자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나만을 위해서, 내 가족만을 위해서, 기도하고 셈(?)하는 적당히 평범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나와, 내 가족과 이웃 그리고 세상 모든 이를 위해서 기도하며 옳은 선택을 할 수 있기를, 선택한 대로 힘차게 실천할 수 있기를, 그래서 여기에서부터 어떤 환경에서도 기쁘게 웃다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다짐해봅시다.
김경훈 프란치스코 신부(가톨릭신문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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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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