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올여름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 따른 오염수를 바다로 방출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핵발전소 사고 이후 발생한 130만 톤에 달하는 오염수 저장탱크가 거의 포화 상태라, 앞으로 30년에 걸쳐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보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미 지난달에 도쿄전력이 오염수 해양 방류 시설의 시운전을 마쳤으니, 어쩌면 이 글이 지면에 실릴 때면 이미 방류가 시작됐을 수도 있겠습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소금 사재기 현상이 보여주듯, 일본의 오염수 해양 투기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한국갤럽 조사에서 발표했듯, 응답자의 78(매우 62+어느 정도 16)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로 인한 해양·수산물 오염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천일염을 한 포대 사 둬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하다가, 한 지인의 따끔한 일침을 듣고 마음을 접었습니다. “온갖 해산물이 다 오염이 될 텐데, 그깟 소금 하나만 미리 사둔다고 안전하겠는가? 그렇게 불안하면 소금 쟁여둘 정성으로, 오염수 해양 투기하지 말라고 한 목소리라도 더 보태야 하지 않겠는가?”
후쿠시마 인근 항만에서 잡힌 우럭에서 기준치의 180배에 달하는 고농도 세슘이 검출되는 현실을 보며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건만, 일각에서는 오염수와 관련한 사람들의 걱정을 ‘비과학적인 괴담’이며, 불안감을 조장해 정부를 비판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거짓 선동’이라고 주장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논쟁이 벌어지는 사안에 대해 치열한 토론과 건설적인 논쟁을 하기보다는, 사생결단으로 이겨야 하는 싸움판처럼 다른 의견이나 반대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빨갱이, 간첩이라고 몰아가며 제거하던 수많은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이 합리적인 비판적 사유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안타까움이 듭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를 둘러싼 우려는 정치적 선동에 휩쓸린 우리 국민만 유난하게 걱정하는 건 아닙니다. 당사자인 일본 어민들도 몹시 걱정하고, 중국과 러시아, 필리핀 등 일본과 인접한 국가를 비롯해 세계적인 환경단체들도 반대합니다. 오염수의 해양 투기는 유엔 해양법 협약을 위반하는 행위이고, 방사능 오염 물질을 이렇게 바다에 대규모로 방출하여 처리하는 일은 처음 일어나는 일이니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는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처리를 마친 오염수는 인체에 무해할 것이라고 설득하지만, 이 설비가 해결하지 못하는 삼중수소(트라이튬)가 생태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계속 비판이 있습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자신하지만, 그런 호언장담을 들으면 들을수록 과학만능주의의 오만함처럼 느껴져 더 불안합니다. 과학은 검증된 사실로만 말하는 겸손한 학문일 텐데, 이론으로 세운 가설을 마치 사실처럼 확신하며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하려는 것만 같아서 그렇습니다. 이럴 때야말로 과학은 인간의 생명에 미칠 영향을 염두에 두며 더 신중하게 접근하고, 정부는 국민 안전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과 외교를 펼쳐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6월 26일,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와 정의평화위원회 등 43개 단체가 연대해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성명서는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투기는 공동의 집 지구 생태계에 대한 위협이며, 동시에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만드신 창조세상의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라며,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라고 요구합니다. 덧붙이자면, 지구상에서 이미 있는 핵발전소나 핵무기를 감히 제대로 감당치도 못하면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경제적 이득을 앞세워 늘려가며 미래 세대에게 짐 지우는 일은 그만 멈춰야 하겠습니다.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