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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한담] 소멸과 생성에 대한 소고 / 임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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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오랜 지기인 한 친구에게서 자주 연락이 옵니다. 몇 해 전 상상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 후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해 왔던 친구는 요즘에 이르러 ‘사는 게 의미가 없다’는 말까지 자꾸 꺼내고 있습니다. 집까지 경매에 부쳐지는 등 하루아침에 인생 전체가 무너지는 고통 속에 놓인 옛친구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잃지 않아야한다는 위로를 피력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거기에 지금의 상황 속에서도 절대 잃지 않아야 할 것은 자기 자신, 가장 소중한 사람은 너 자신임을 잊지 말아 달라고 힘주어 말을 보태는 중입니다. 한발자국 물러나 자신을 쓰다듬어 보라는 의미입니다.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주체적 존재로서의 자기인식을 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고통 속에 놓이는 자신을 어떻게 쓰다듬을 수 있을까요. 나는 늘 사물(事物)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을 권하곤 합니다.

구체적인 사물 또는 감정 작동의 동기가 되는 대상과의 직접적인 대면 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성을 인지하게 하는 사진치유 프로그램을 운용 중인 나는 사물의 범위를 더 넓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형태를 가진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 삶의 기운, 공간 등등 자신의 내면을 통해 인지하는 모든 대상을 사물의 범주에 포함합니다.

기쁨이나 환희의 감정에 국한하지 않고 슬픔, 고통, 좌절 등의 심리적 어려움을 일으키는 동기이자 근원이 되는 모든 대상을 사물의 영역에 넣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 모든 감정의 원인이 되는 사물을 자기 스스로 타자화하고 객관화 과정을 거침으로써 성찰적 승화 감정으로 대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물을 통한 자기승화 감정을 접하기 위해서는 ‘소멸과 생성’이라는 과정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사과 한 개를 구해 매일 볼 수 있는 공간에 놓습니다. 그리고 하루 한 번씩 5분 정도 이 사과를 바라봅니다. 이때 드는 감정의 형태와 생각의 흐름에 주목합니다.

싱싱했던 사과는 조금씩 무르게 되고 껍질과 속이 모두 쭈글쭈글해집니다. 이때 우리는 먹고싶다는 욕구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동화의 감정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결국 썩어들기 시작하는 사과를 보면서 알 수 없는 연민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다시 중요한 것은 그런 연민의 감정이 생기는 자신에서 벗어나 그 감정 상태인 나를 타자화해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나는 보는 행위를 통해 이런 감정을 갖는 사람이구나 하며 자신을 탐색하는 것입니다. 물러터진 사과는 곧 딱딱하게 굳어갑니다. 형태는 완전히 바뀌고 그야말로 소멸의 시간을 목도하게 됩니다.

만약 타자화 감정에 익숙해진다면 이 과정이 될 때 즈음 당신은 하나의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특정한 사물을 통해 감정적 승화 작용을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하찮은 미물이란 없음은 물론 어떠한 나락의 상황에서도 결국 존엄하기 그지없는 생명의 역동성을 인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때가 되면 그 사과는 다른 사람의 눈에 쓰레기로 보일지언정 자신에게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로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소멸이 생성의 기제로 전환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긴 생의 여정을 이어가면서 다양한 감정의 형태를 겪게 됩니다. 마음 깊이 내재된 심리적 환희 못지않게 상흔 또한 당사자의 삶에 대한 의지를 다시 불태울 수 있는 동기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당신 바로 자신입니다. 내 안의 나를 깊이 살피는 시간, 그 전환적 역동의 시간이 지금도 당신에게 흐르고 있습니다.
임종진 스테파노(사진치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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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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