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홍보를 위해서 전국 여러 성당을 다니다 보면 예전 성당 모습과는 달리 크든 작든 커피와 같은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개방감이 있는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주일 오전 미사를 마치고 그곳에 앉아 있으면 봉사자께서 오셔서 커피 한 잔을 권하는 말씀이 정겹다. 주일 낮이 될 때면 사양하지 않고 마신 커피가 기본 석 잔은 넉넉히 채우게 된다.
과거 성당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자판기 음료 정도가 전부이고 조용하게 앉을 곳을 찾아 분리된 공간인 교리실로 향했던 기억을 떠올리자니 적지 않은 변화이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변화가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있을 것이다. 거리에 커피 전문점이 넘쳐나고 커피 소비량 증가와 맞물린 사회적 분위기가 성당의 공간 활용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목적으로도 교우들이 미사 전후나 일상생활 중에 성당 안에서 편히 앉아 모임과 휴식을 이어가길 바라는 일상 친화적인 성당의 모습도 기대했을 것이다.
‘커피하우스’.
성당 안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나누는 공간에 대해 다양한 별칭들이 있겠으나 문득 ‘커피하우스’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커피는 오스만 제국의 음료에서 시작해 오스트리아 빈을 통해 유럽으로 퍼져갔다. 이른바 커피하우스가 유럽 안에 자리잡아가며 이곳은 당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모여 담소와 사교를 나누며 생각과 문화를 주고받는 장소가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알텐베르크(1832-1919)의 “고민이 있으면 카페로 가자… 사람을 경멸하지만, 사람이 없어 견디지 못한다면 카페로 가자”라는 글을 통해 일상 안에 녹아든 커피하우스의 분위기를 가늠해 본다.
특히 프랑스에서 커피하우스는 계몽주의자들의 토론의 장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인 볼테르, 루소 등은 단골집이 있었고 커피 애호가였다. 그리고 커피하우스에서 작은 강연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시민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파리 시민들에게 있어 커피하우스는 뉴스 공급처였고 프랑스 혁명이 이러한 커피하우스와 같은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 소통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왕실이 신민을 대변하는 시대에서 커피하우스를 비롯한 살롱, 연회 모임 등이 공론장의 역할을 수행하며 시민이 등장하는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이끌었다고 주장한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듯이 그러한 공간 안에서 다양한 주제의 토론, 논쟁, 담론이 형성되며 사회의 변화를 이끌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가니 성당 안 커피하우스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여유이기보다 각성(覺醒)으로 다가온다.
성당 안에 풍경을 그려본다. 교우들이 이곳에 앉아 일상을 나누기도 하고 신부님의 강론을 되새기기도 한다. 때론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가세하여 신앙고민에서부터 사목관련 질의를 주고받기도 하며 즉석에서 작은 토론이 열려 함께 경청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성당이라는 공간 안에 위계와 역할이 나누어져 있는 거룩한 공간인 ‘성전’과 같은 눈높이로 함께 마주 앉아 있는 ‘성당 안 커피하우스’가 조화를 통해 만들어갈 교회의 모습은 몽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오늘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교회의 미래에 대한 담론을 던져본다.
이대로 레오 신부(가톨릭신문 기획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