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이 가진 적은 것이 악인들의 많은 재산보다 낫다.”(시편 37,16)
저는 시편의 이 구절이 참 마음에 와 닿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저의 처지를 회자시키기에도 좋고, 나 스스로를 의인으로 둔갑(?)시키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약자의 비루한 변명 같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저처럼 위로를 받겠다 싶습니다. 그렇다고 재산을 소유한 사람들이 잘못됐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살아온 시간보다 여생이 훨씬 짧을 요즈음의 저는 아주 작은 소소한 재물이나 사실에 집착하면서 더 가지지 못하고 더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조바심이 가끔 들곤 합니다. 아직까지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고 내려놓기도 포기도 할 줄 모르는 제 아집이 참으로 미울 때가 많습니다. 삶의 일선에서 퇴장한지도 어언 몇 년이 흘렀기에 더 이상 모자랄 것도 없고, 아쉬울 것도 없어야 할 텐데, 아직까지 찌질하게 남아있는 잡스러운 내 욕심의 찌꺼기가 옅은 앙금으로 남아 때때로 저를 심히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바로 더(more) 하고 싶다는 노구의 허욕이지요.
철학자이자 시인인 독일의 괴테는 그의 책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참 의미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이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문득 결핍이란 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있어야 할 것이 아예 없거나 모자람을 말하는 이 단어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과연 무엇이며, 이에 반한 풍요란 말은 또 우리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말입니다.
풍요로운 오늘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결핍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무엇인지조차도 잊어버린 채, 그 풍성한 늪에 취하여 흐느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둠 속 한쪽 어딘가에서 부족함에 시달리는 적지 않은 슬픈 영육들이, 오로지 오늘 하루만의 생존과 위로를 받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풍요로움은 쪼들리고 팍팍함보다는 넉넉하고 여유가 있어 마음이 푸근해지기도 합니다. 모자람과 결핍은 항상 쫓기듯 종종걸음을 내딛게 하지만, 풍요는 모든 면에 있어서 보다 나은 삶의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해서 나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불편하고, 아쉽고, 때론 풍요의 그늘에서 그 존재감이 미미할지라도, 결핍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넉넉함은 부족한 곳에서 그 빛을 발하듯이 결핍된 환경에서 겪게 되는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됩니다. 바로 부족함에서 배울 수 있는 참된, 풍요로운 마음입니다. 서로를 다독이며, 슬기롭고 조화롭게 이루어 나가면 좀 좋으련만, 세상은 꼭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결핍과 풍요는 각각의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양하게 다가서고 있습니다.
늘그막에 순간순간 고개를 드는 치졸한 저의 욕망도 이제는 잠재우고, 넉넉하지만 겸손하게, 모자라지만 진솔하고 소박하게 꾸며가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모자라고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순간이, 오히려 저를 일깨우고 깨우치는 주님의 음성으로 인식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미사 강론 중 신부님의 한 마디가 가슴 깊이 새겨집니다.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견디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 나의 삶 중심에 하느님이 계신지를 잘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허돈 베드로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