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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한담] 소티리오스 대주교님과의 마지막 만남 - 영원히 꺼지지 않을 밀납 초의 향기를 맡다 / 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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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나와 같은 시기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한국 정교회 초대교구장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님께서도 수술과 항암을 하신다는 소식을 받았다. 왠지 마지막 만남일 것 같은 예감에 아픈 몸을 이끌고 가평수도원으로 향했다. 힘드신 시기라 짧은 면회를 허락받고 「그림으로 보는 성경 묵상」 책을 들고 찾아뵀던 소티리오스 대주교님. 많이 야위셨지만 새롭게 집필하신 책에 사인을 해주셨다. 떨리는 손으로 쓰신 암호 같은 글씨를 보고 수녀님께 해독해 주라고 하시며 힘들게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성인들 가운데 병마를 통해 성인이 되신 분이 많다시며 아픔이 올 때마다 십자가 주님의 고통을 떠올리며 기쁘게 아픔을 봉헌할 때 그 순간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의 은혜를 체험해보라고 전해주셨다.

지극히 사랑하시는 그분께서 더 가까이 부르시고자 애타게 찾으시는 사랑을 받아들임은 순교 정신과 같다는 것이다.

힘든 항암 시기에 버팀목이 되어 주신 대주교님의 말씀은 참 귀했다. 이 분과 한 달간 함께한 터키, 크레타섬의 흐리스피기 봉쇄 수도원, 그리스에 머물렀던 사도 바오로의 길이 내 머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신문에 연재할 대주교님의 글을 붙들고 가슴 벅찬 사도의 생애를 그림으로 풀어내던 그때, 대주교님이야말로 한국으로 파견되신 사도임을 절감했다.

“사도 바오로는 다마스쿠스의 회심 이후 곧바로 선교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위대한 교부들을 만들어낸 사막에서 3년간 기도, 금식, 영적 수련을 했다. 자신의 믿음을 완벽하게 하고 난 후 선교 목적을 깨닫는다. 지금 교회가 필요한 것은 바오로가 펼친 선교사업의 외형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이러한 바오로의 선교 정신을 본받는 것이다.”

주옥같은 대주교님의 말씀이다.

거대한 산의 준령을 따라, 오랜 세월의 비밀을 간직한 신묘한 공간에서 공간으로 사도의 길을 따랐던 여행길이었다. 영적인 고귀함과 선교의 열정이 만나 사랑의 그물을 펼쳐 놓으셨던 길이다. 일반인이 근접할 수 없는 크레타섬 흐리스피기 봉쇄 수도원에서의 체험은 대주교님이 아니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체험한 것을 녹여내고, 고요히 사색의 시간을 보낸 후 그림을 풀어내라는 대주교님의 깊은 배려의 일정이었다. 이토록 혼탁하고 바쁘게만 돌아가는 세상에서 맑고 고귀한 영혼의 수녀님들과 함께한 체험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하느님을 선포한 아테네의 최고 법정 아레오 파고스와 고린토, 에페소, 폐허 속에 빛나던 페르가몬 등등. 이 놀라운 성지를 대주교님과 함께한 시간들을 어찌 잊겠는가!

새로운 성화 작업을 할 때마다 한가득 그림을 안고 대주교님을 기쁘게 찾아뵀다. 허심탄회한 말씀을 들려주시던 인자하신 분, 육신은 검소하고 청빈하나, 정신은 한없이 높은 곳에 머무시고, 인자하기 그지없으나 강건하신 절제를 몸소 보여주셨다. 첫 성화 작업이었던 묵주기도 그림을 들고 감수를 받기 위해 만난 인연이 이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졌다.

마취없이 수술을 하시고 오히려 의료진을 위로하신 대주교님의 마지막 모습은 천국의 향기로 가득하다. 종교가 없는 의사들조차도 이러한 초월자의 경지를 접하고서 경이로움에 떨었다고 한다. 빛나는 얼굴로 천상세계에 계신 듯, 모두에게 헤어짐의 슬픔 대신 평화로운 기쁨을 남기신 소티리오스 대주교님은 남아있는 우리에게 부활의 확신을 선물로 안겨 주셨다.

큰 분을 가까이에서 모셨던 은총의 시간을 떠올리며 나는 지금 그분의 인물상을 만들고 있다.
정미연 아기예수의데레사(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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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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