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구와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정난주(마리아, 1773~1838년)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11월 30일 제주교구 주교좌중앙성당에서 열린 학술대회 ‘제주와 정난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에서다. 앞으로 교구가 설립할 ‘정난주 기념관’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고려대 김윤선(데레사) 교수는 정난주를 “제주지역 천주교 전래의 시작을 연 인물이자 신앙을 알린 인물”이라며 “여성이 역사에 흔적을 남기기 어려웠던 조선 시대였지만, 오늘날까지 그 이름을 남기고 정신을 전해주는 천주교 여성”이라고 평했다. 그 배경에는 “황사영(알렉시오)의 아내이자 정약현의 딸로 일찌감치 대중에 알려지기도 했지만, 유배길에 아들을 떼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라는 상징도 있다”고도 했다.
전승이나 문학작품에 따르면, 정난주는 유배지로 향하던 중 추자도에 아들 황경한을 두고 갔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할 때, 죄인의 아들로 목숨을 부지하거나 살아남더라도 사람 구실을 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아들을 ‘구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사연구소 권이선(로사) 연구원은 “조선 시대에는 배소지로 유배 죄인이 내려가기까지 감시하며 호송하는 절차가 명확히 준비돼 있었다”며 “「연좌안」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황경한의 배소지도 이미 추자도로 정해져 있었다”면서 알려진 것과 다른 역사적 배경을 전했다.
기록에는 정난주의 이름이 ‘정명련’으로 돼있다. 그가 왜 정난주로 전승됐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권 연구원은 “난(蘭)이 갖는 전통적 의미로 유추해보면, 난초는 깊은 산중에 홀로 피어 은은한 향을 내뿜는 절개있는 여인에 비유됐다”며 “제주에서 보인 인품과 삶이 난과 유사했기에 은유적인 의미에서 불린 것 같다”고 추정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송란희(가밀라) 학술이사는 “인물을 기념하는 것은 현재를 사는 이들에게 동력이 되고, 미래에 전할 가치를 찾기 위함”이라며 “정난주의 무덤이 있는 대정성지는 오랫동안 추모의 장소로 사랑받아왔는데, 이곳에 기념관이 세워진다면 기억의 공간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는 “심포지엄이 인물을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노드 교회가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배움의 순간이 됐길 바란다”며 “서울 세계청년대회 준비 차원으로도 앞으로 순례길과 신앙체험들을 가꾸는 일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