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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지혜는 무엇일까?

[월간 꿈 CUM] 지금 _ 나와 너 그리고 우리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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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방귀를 뀌면 이상하게도 소리만 날 뿐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남자는 병원에 갔다.

“선생님, 전 방귀를 뀌면 소리만 크고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아요. 무슨 병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그러자 의사는 “그럼 방귀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보죠”라고 말했다. 시간이 좀 흐르자 마침내 큰 소리와 함께 방귀가 나왔다. 그러자 얼굴이 누렇게 변한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급히 코 수술부터 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너무나 모른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얼마나 많은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 차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 어쩌면 내가 아는 나 자신도 진정한 나 자신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인간 지성의 유한함은 스스로 내면의 문제를 일으킬 뿐 아니라 대인관계에서는 불신과 갈등을 초래한다. 인간의 우매함은 결국 하느님과의 관계마저 손상시킨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청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국가가 인정한 신을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졌다. 소크라테스가 도대체 청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기에 사형을 받게 되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아라!”, 즉 ‘무지의 지’(無知의 知)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당대 최고의 미술가를 찾아가서 ‘아름다움’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또한 그리스 최고의 장군을 찾아가 ‘용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름다움’과 ‘용기’에 대해서 이들만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 이어지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이들은 점차 말문이 막히고 자신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자유를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한 분노와 수치심만을 느꼈다. 이들은 결국 소크라테스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운다.

어릴 적 읽은 백설 공주 이야기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백설은 공주로 태어났지만, 엄마는 백설을 낳자마자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재혼하여 새로운 왕비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자신보다 미모가 더 뛰어난 사람을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성격장애자였다. 마침내 진실을 말하는 거울이 “백설 공주가 더 아름답습니다”라는 말을 하자, 왕비는 분노와 수치심이 밀려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사냥꾼을 시켜 백설 공주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예수님 시대에 종교지도자들은 또 어땠는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 같은 율법학자들은 자신의 속 깊은 모습이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체험을 한다. 예수님만 없었다면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인지, 회칠한 무덤처럼 겉과 속이 다른 존재인지, 그리고 마치 독사처럼 사람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있는 존재인지를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마태 23장) 예수님은 이들이 “하루살이를 걸러내면서 낙타는 그대로 삼키는 자들”(마태 24장)이라고 비난하셨다. 이웃들이 저지르는 지극히 작은 잘못은 일일이 지적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악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는 이들의 비겁하고 옹졸한 모습을 야단치신 것이다. 그러자 이 종교지도자들도 역시 예수님을 죽일 궁리부터 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우리가 진정 어떤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기보다는 오히려 거부하고 싶어하는 존재인 것 같다. 우리 안에는 소크라테스를 죽인 스스로 현명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의 모습과, 예수님을 죽인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했던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이 모두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모습 혹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만을 보고싶어했기 때문에 진정한 자신을 부정하고 스스로 자신을 악으로 몰아갔다.

자신과 이웃 그리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생각이 반드시 옳지 않다는 것,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겸손히 수용해야만 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를 얻은 사람일 것이다.
 
글 _ 박현민 신부 (베드로,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목 상담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전문가연합회에서 각각 상담 심리 전문가(상담 심리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전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성필립보생태마을에서 상담자의 복음화, 상담의 복음화, 상담을 통한 복음화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상담의 지혜」, 역서로 「부부를 위한 심리 치료 계획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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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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