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수도원에서는 매년 탁상 달력을 제작한다.
한 해의 전례력과 더불어 일반 달력에 간단히 일정도 적어놓을 수 있는 예쁜 달력이라서 늘 인기가 좋다. 올해도 새로운 달력이 나와서 수사님들이 한 권씩 받아들었다. 식당에서 새로운 달력을 보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올해 연휴가 어떻게 되는지 달력을 가운데 놓고 신들이 났다. 1월에 연휴 3일, 5월에 연휴 3일을 확인하면서 다들 좋아라 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연휴가 있다 하더라도 특별히 개인적으로 휴가를 내지 않는 다음에야 수도원에 머물러 있어야 하기에 연휴라는 것이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새 달력만 나오면 연휴 헤아리기에 집중하며 신나게 논다. 늘 그렇듯 별거 아닌 일에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고 재미를 찾는 게 수사님들의 장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참을 연휴가 있는 달엔 환호성을 지르고 연휴가 없는 달엔 아쉬운 탄식을 토하면서 11월까지 헤아리며 놀고 있는데 한 수사님이 갑자기 “그건 그렇고, 올해 크리스마스는 무슨 요일이야? 연휴야? 빨리 찾아보자”하고 말했다. 다들 “그러게. 올해 크리스마스는 언제야? 무슨 요일이야? 빨리 찾아보자”고 한다. 월요일이다. 징검다 리 연휴다. 환호가 터졌다.
이때 또 다른 수사님이 “아까 자세히 안 봤지? 올해 부활절은 무슨 요일이야? 부활절도 징검다리 연휴가 아니었나?”하고 물어본다.
다들 징검다리 연휴 찾느라 정신들이 없어서인지 다시 달력을 넘겨 부활절이 무슨 요일인지 찾아보는데, 지켜보던 원장 수사님이 한심한 듯 웃으시며 “아니 부활절은 당연히 매년 주일이지. 뭘 그걸 찾아봐? 다들 정신들이 없구먼”하신다.
아하, 그렇지! 부활절은 항상 주일이지. 성 금요일이 무슨 요일인지 물어보지 않길 다행이라며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징검다리 연휴에 정신이 팔려서 기본적인 교리도 까먹은 채 부활절이 무슨 요일인지 찾아본 우리가 부끄러웠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성 바오로 수도회)
1991년 성 바오로 수도회에 입회, 1999년 서울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선교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사제서품 후 유학, 2004년 뉴욕대학교 홍보전문가 과정을 수료했으며 이후 성 바오로 수도회 홍보팀 팀장, 성 바오로 수도회 관구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그리스도교 신앙유산 기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