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대검찰청에서 함께 근무했던 한동수 전 감찰부장.
한동수 전 감찰부장은 자신의 저서에서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쿠데타’ 발언을 폭로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한동수 전 감찰부장을 전은지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판사로 19년을 지낸 후 대형로펌에서 안정적으로 일했던 한동수 전 대검 감찰부장.
한 전 감찰부장은 2019년 대검찰청 감찰부장 공모에 지원하면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검찰 내부의 감찰이 충실하게 이뤄지고, 검찰 개혁을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검찰의 실제 모습은 한 전 감찰부장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윤 총장은 감찰부의 독립적인 역할을 허락하지 않았고, 때로는 반말을 일삼으며 자신의 힘을 과시했습니다.
윤 총장의 지시로 한 전 감찰부장은 대검 부장회의에도 참석 할 수 없었습니다.
<한동수 요셉 / 전 대검찰청 감찰부장>
“대검찰청 8층에 검찰총장실이 있는데요. 첫번째 각 사무국장하고 부장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첫 번째 만남인데 통상 의례적으로 악수를 하는 자리인데 악수를 하지 않더라고요. 앞으로 감찰할 때는 나의 승인을 받고, 허락을 받고 하라 이제 지침을 주는 거죠.”
하지만 한 전 감찰부장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검언유착 사건인 이른바 ‘채널A 사건’에서 윤 총장의 징계를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다사다난했던 2년 9개월 동안의 대검찰청 생활.
한 전 감찰부장은 이를 지난해 1월, 저서 「검찰의 심장부에서」를 통해 공개했습니다.
저서에는 2020년 3월 19일 회식 자리에서 윤 총장이 ‘쿠데타’를 언급했던 날의 기억도 담겼습니다.
<한동수 요셉 / 전 대검찰청 감찰부장>
“쿠데타 발언은 "이제 내가 육사에 갔더라면 쿠데타를 했을 것이다. 5.16은 5.16 쿠데타를 말하죠. 김종필 등 중년급이 하였다. 검찰로 치면 그 부장에 해당된다. 그래서 나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하였죠. 말로는 이제 자유민주주의를 얘기하지만 정말 독재적인 사고방식들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다.”
지난해 12월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소식에 한 전 감찰부장은 놀라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초법적 존재라 여기는 윤 대통령이 내비쳐온 욕망의 실현이었기 때문입니다.
<한동수 요셉 / 전 대검찰청 감찰부장>
“무력에 의한 정부의 전복을 말하는데 이제 그걸 강성 쿠데타라고 한다면 전통적인 의미의 쿠데타라고 한다면, 연성쿠데타. 국민들의 민의를 왜곡하고 잘못된 판단 자료를 주면서 집권해 가는 과정도 하나의 쿠데타이죠.”
첫 출근 후 매일 새벽 3시 반이면 잠에서 깼을 정도로 긴장의 연속이었던 대검찰청 생활.
하지만 꾸르실료 수료 후 법조 울뜨레아 간사도 맡으며 신앙생활에도 열심했던 한 전 감찰부장은 모든 어려움과 고통을 기도로 극복했습니다.
<한동수 요셉 / 전 대검찰청 감찰부장>
"새벽미사에 가서 매일미사에서 오는 복음. 화답송 그런 글들이 저한테 큰 힘을 주었어요. 심신이 견디지 못할 때는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수원 말씀의 집이라든가 아니면 또 예수고난회 오상영성원 같은 데서 피정을 통해서 했고"
겸손한 법조인, 주님 사랑을 실천하는 평신도로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헌신하는 일.
한 전 감찰부장이 가진 간절한 소망이자, 앞으로 걸어갈 길입니다.
한 전 감찰부장은 탄핵정국에서 마주하는 고통도 참된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동수 요셉 / 전 대검찰청 감찰부장>
“기도하기도 하고 또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도 하는 이 과정들을 거쳐가면서 정말 참된 의미의 민주주의들, 서로 인권을 존중하고 생명과 평화를 존중하는 그런 나라로 계속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한 전 감찰부장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조문은 “인류가 이룩한 최고의 가치”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영장이 실현되지 않는 나라는 법치주의가 아니”라며 “영장 앞에서는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고 일깨웠습니다.
CPBC 전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