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뀔 때가 되면 여러 가지로 마음이 교차(交叉)되곤 한다. 아쉬움과 잘못에 대한 반성, 좋은 일에 대한 기쁨, 그리고 도움을 준 일과 도움을 받은 일에 대한 감사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용서와 화해를 구하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도 있다. 이 모든 일이 이제는 과거 속으로 흘러갔다.
12월 31일이나 1월 1일은 똑같은 하루다. 오늘 이 시간도 1년 365일 중 같은 하루의 시간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감회에 젖는다. 그것은 시간이 구분되어 있고,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인가?
독일의 고전주의 극작가요, 시인이며,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쉴러(Johan Christoph Friedrch von Schiller, 1759~1805)는 “시간의 걸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인간은 영원으로 이어지는 영겁(永劫)의 흐름 위에 연(年), 월(月), 일(日), 시(時), 분(分), 초(秒)라는 눈금을 새겨놓고 시간을 구분하면서 그 의미를 헤아리고 있다. 이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재는 우리에게 개념상으로 존재하지만, 포착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현재는 그 순간에 곧장 과거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성경 시편 90장 12절에서 “저희의 날수를 셀 줄 알도록 가르치소서. 저희가 슬기로운 마음을 얻으리라”라고 했다. 여기서 날수를 셀 줄 안다는 말은 나의 삶이 어디쯤 왔으며, 또 어떻게 가고 있는지를 알아본다는 것이다. 즉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동시에 나의 삶이 얼마쯤 남아있으며, 그리고 부모와 자식과 신앙인으로서 제 자리에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래야 슬기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생일, 회갑, 결혼기념일, 졸업식, 시무식 등을 갖는다.
소크라테스(Socrates, BC470~BC399)는 재판 과정에서 “철학을 포기하면 살려주겠다”라는 아테네 법관들의 회유에 “음미(吟味)하지 않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찌개를 끓이고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수시로 맛을 봐 가며 양념을 넣기도 하면서 간을 맞춘다. 우리의 삶도 요리하듯이 제대로 맛을 내고 있는지, 가끔 철학적인 사고로 음미해봐야 한다. 또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느님 말씀의 거울에 비춰가면서, 간도 맞춰봐야 한다.
새해를 맞이하여 자라가 나이 많은 거북이에게 세배하러 갔다. 늙은 거북이는 절을 받으면서 “늘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며 충실히 살아라!”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자라가 “작은 것이라니요? 큰 것에 신경 쓰고 살아야 하지 않은가요?”하고 물었다. 거북이는 “아니야,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수 있는 비결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결과라네. 너도 느리더라도 한 걸음씩 열심히 기어가면, 껑충껑충 뛰는 토끼도 이길 수 있다네”라고 했다.
그렇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라는 노래 가사처럼, 힘이 있고 시간이 있고 의욕이 있을 때 작은 일에 충실하며 인생을 열심히 잘 살아야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후회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한 살씩 더 먹은 자로서, 올 한 해도 ‘날수를 세어가면서’ 복 받는 삶이 되도록 하자.
글 _ 최봉원 신부 (야고보, 마산교구 원로사목)
1977년 사제품을 받았다. 1980년 군종장교로 임관, 군종단 홍보국장, 군종교구 사무처장 겸 사목국장, 관리국장, 군종참모 등을 지냈으며 2001년 군종감으로 취임, 2003년 퇴임했다. 이후 미국 LA 성삼본당, 함안본당, 신안동본당, 수산본당, 덕산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했으며, 마산교구 총대리 겸 사무처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