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 곳! 주거지이다. 개발의 광풍이 불었던 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지금까지 더 나은 주거지를 만들겠다고 그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을 몰아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주거지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지하로, 옥탑방으로, 고시원으로 쫓겨나 이른바 ‘지옥고’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마저 갈 곳을 찾지 못해 변두리로, 더 외진 변두리로 밀려나야 했다. 살기 좋은 나라, 아름다운 환경을 위해서 정작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자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기만 하는 고층 아파트에 내어줘야만 했다.
사람뿐만 아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이라고 마냥 하늘에만 있을 수만은 없다. 내려서 먹이도 찾아야 하고, 보금자리를 꾸리고 알을 낳고 번식하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 서식지이다. 모든 창조물은 이렇게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데, 인간이 개입하는 개발의 이야기만 나오면 사시나무 떨듯 움츠리게 된다. 개발이 지나간 자리에 서식지는 파괴된다. 여기서 저기로 옮겨서 될 일이 아니다.
살아남으려는 최선의 노력이 힘에 부칠 때 소리가 나게 된다. 아픔이 울음이 되고 울음이 외침이 된다. 그 외침에 응답하는 것은 같은 창조물로서의 도리이다. 함께 살아야 하기에….
그렇게 아프다고 소리칠 때 함께 응답한 기억들이 있다. 2003년 삼보일배. 세 걸음을 걷고 한 번 절하며 새만금 갯벌 보존을 위하여 전북 부안에서 서울까지 320km를 65일간 쉬지 않고 행진했다. 단순히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오늘날 더욱 심각하게 다가오는 환경파괴에 의한 기후 위기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물질 위주의 삶, 개발과 성장 위주의 정책은 살아가는 모든 생물을 아프게 하고 마침내 울부짖게 만든다. 그 울부짖음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공멸의 길을 걷는다는 종교인들의 예언이었다.
하지만 결국 새만금 사업은 그 많은 생물의 외침을 외면하고 그럴싸한 비전을 제시하며 물을 막아 갯벌을 가두고 말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수없이 제기된 문제에도 불구하고 새만금은 완공되었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그래서 새만금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새만금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새만금 방조제 안쪽 만경강 수역인 수라갯벌에는 수많은 법정 보호종과 저어새가 찾아와 서식하고 있다. 저어새는 멸종위기 1급으로 세계에 오천여 개체도 안 되는 국제 멸종위기종이다. 이곳에 새만금 신공항을 짓겠다고 나선 것이다.
만약 계획대로 새만금 신공항이 건설되어 비행기가 이륙과 착륙이 반복되면 조류를 포함한 수많은 생물의 생존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저어새와 도요새, 물떼새, 황새 그리고 가마우지들과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연말 끔찍한 참사를 빚은 무안공항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한데 말이다.
끊임없는 인간의 개발 의지는 이렇듯이 함께 살아가는 자연의 섭리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자해가 되는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새만금 개발 사업을 중단하고 해수 유통을 확대하여 수라갯벌을 비롯한 새만금 갯벌을 되살려야 할 것이다.
2003년에 이어 창조물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이에 응답하는 행진이 진행되고 있다. ‘새·사람행진단.’ 새만금 신공항 기본계획을 취소하라고 서울행정법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다.
역지사지라고 할까? 도요새의 마음이 되어서, 밀려나고 쓸려가는 생명의 아픔을 품고서 오늘도 비를 맞으며, 태양 빛을 맞닥트리며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마음을 전하고 있다. 지난 8월 12일 시작되어 9월 11일 새만금 신공항 취소소송 선고가 있는 날까지 마음을 담은 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워낙 새로운 뉴스와 정보에 밝은 우리이니 잠깐의 검색을 통해서라도 함께 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피조물은 서로 연결돼 있기에 사랑과 존경으로 소중히 다루어야 합니다.”(찬미받으소서 42항)
글 _ 나승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서울대교구 제6 도봉-강북지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