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A 양은 열세 살 어린 나이에 갑자기 엄마를 잃었다. 성모님께 엄마의 부재를 메워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으나 별 위로가 되지 못했다. 성모님보다 A 양의 마음을 달래준 것은 스마트폰이었다. 아빠의 감시를 피해 가며 온종일 스마트폰과 인터넷게임에 빠져 지냈다. 어쩌다 손에서 기기를 내려놓으면 불안해하는 금단 증세까지 생겼다.
온라인상의 일탈은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져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기 시작했다. 무리 중에는 막 사춘기에 접어든 A 양을 플러팅하는 사내아이도 하나 있었다. A 양도 갈수록 외모에 신경 쓰며 짙은 향수까지 뿌리고 다녔다. 아빠의 근심이 깊어만 갔다. 아빠는 A 양을 강제로 기숙형 대안학교로 보내버렸다. A 양은 처음엔 반발했으나 다행히 좋은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과 잦은 상담을 하며 안정을 되찾고 방황에서 벗어났다.
방금 소개한 A 양은 필자가 꾸민 가상의 인물이다. 그러나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유형에 속한다. 입시 경쟁과 사교육 등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스마트폰 중독에 빠지거나 친구와 이성 문제로 부모님 속을 썩이는 청소년들이 어디 한둘일 것인가.
그런데 시대적인 소품을 몇 개만 바꾸어 놓으면 A 양의 사연은 16세기 스페인의 성인인 예수의 성녀 데레사(1515~1582)의 사춘기 시절 일화로도 읽힌다. ‘스마트폰’을 ‘기사 소설’로, ‘인터넷게임’을 ‘체스’로, ‘기숙형 대안학교’를 ‘수녀원’으로 바꾸면 다른 문장은 손댈 필요도 없다.
데레사의 「자서전」(Libro de la Vida, 이하 LV)을 보면 성녀도 열세 살 때 어머니를 잃고 “울면서 성모님께 대신 어머니가 되어 달라고 간청했다.”(LV 1,7) 그러나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기사 소설에 빠져 “아버지 몰래 숨어서 밤낮으로 읽었으며, 읽을거리가 떨어지면 불안해할 만큼 극단적으로 심취해 있었다.”(LV 2,1) 기사 소설은 당시 최고의 인기 장르였으나 허황된 내용을 다루고 있었기에 신앙심 깊은 아버지는 딸의 지나친 몰입을 걱정했다.
데레사는 체스에도 빠져들었는데 이 놀이는 이후 그녀가 평생 즐기는 취미가 되었다. 행실이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려 집 밖으로 나돌아다녔으며 개중에는 연정을 품고 접근해 오는 사촌도 있었다. 데레사도 허영에 들떠 “손과 머리카락 손질에 공들이고 향수와 온갖 장신구들로 한껏 멋을 부렸다.”(LV 2,2)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아버지는 데레사를 아빌라의 ‘은총의 성모님 수녀원’에 기숙 학생으로 강제로 집어넣었다. 데레사는 다행히도 이곳에서 한 자상한 지도 수녀를 만났다. 그리고 “수녀님과 좋은 교제를 통해 마침내 예전의 나쁜 교제에서 비롯되었던 습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LV 3,1)
혹시 비슷한 자녀 문제로 속 썩는 부모님이 계신다면 이 글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성인에게도 사춘기가 있었고 방황했던 시절이 있었다. 누가 아는가? 지금은 골칫덩어리인 우리 아이가 커서 공경받는 인물이 될는지.
글 _ 전용갑 요셉(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 스페인어통번역학과 교수, 세계문학비교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