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신부님의 강론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 1511년 12월 21일, 라 에스파뇰라섬(오늘날의 도미니카와 아이티공화국) 산토도밍고의 한 성당. ‘엔코멘데로(Encomendero)’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그들은 개종과 보호를 명목으로 원주민 노동력을 강제로 징발하던 스페인 식민자들이었다. 대림 제4주일인 이날 도미니코 수도회의 안토니오 데 몬테시노스(Antonio de Montesinos) 신부가 강론대에 올랐다. 성탄을 앞두고 엔코멘데로들은 “이역만리 타향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와 같은 따뜻한 위로의 말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부의 입에서는 예상치 못한 발언이 터져 나왔다. 원주민을 착취하는 엔코멘데로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표현도 직설적이었다. “여러분은 지금 죽을죄를 짓고 있습니다.…말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무슨 권리로, 무슨 명분으로 이 원주민들을 이토록 참혹하고 처참한 노예로 부리고 있단 말입니까? … 이들은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까? 이들에게는 이성적인 영혼이 없단 말입니까? … 명심하십시오.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신앙을 거부하는 무어인이나 튀르크인들처럼 구원받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섬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흥분한 엔코멘데로들은 도미니코 수도회 측에 발언 취소와 사과를 요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본국에 대표단을 보내 왕(페르난도 2세)에게 몬테시노스를 비롯한 수도회 신부들의 즉각적인 추방을 요구했다. 왕은 양측의 견해를 듣고 나서 신부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512년 12월 신대륙에 적용된 최초의 법률인 ‘부르고스 법’을 제정했다. 법안에는 원주민의 노예화와 강제노역을 금지하고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멀리 떨어진 바다 건너편에서 이 법이 준수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 일은 그때까지 당연시되거나 쉬쉬해오던 원주민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세상에 알린 첫 신호탄이 되었다.
몬테시노스 신부의 강론은 ‘인류 지성사에서 가장 위대한 연설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사실 전교를 정복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16세기의 시대적 분위기에서 이러한 주장을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칫 파문당하거나 목숨을 잃을 위험성도 있었다. 게다가 엔코멘데로들은 본국에서 온 성직자들을 후대했고 뇌물을 찔러주기도 했다. 자신들의 치부를 눈감아주고 본국의 교회와 왕실에 잘 이야기해 달라는 암묵적인 청탁이었다.
몬테시노스 신부도 엔코멘데로들이 원하는 내용의 강론을 했더라면 속 편하고 무탈했을 것이다. 아마도 감사의 표시로 봉헌 예물이 쏟아져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의하게 얻은 것으로 제사 드리면 부정한 제물이 되고, 무도한 자들의 봉헌물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법”(집회 34,21-22 참조)이다. 몬테시노스 신부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믿음 즉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는 복음의 진리만을 따랐다.
전쟁과 테러, 빈곤과 기아, 기후위기와 환경문제 등 세상은 여전히 혼탁하다. 약자를 착취하는 현대판 엔코멘데로들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세상을 바꿀 신부님의 강론이 다시 한번 나올 때가 되었다.
글 _ 전용갑 요셉(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 스페인어통번역학과 교수, 세계문학비교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