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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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함과 관대함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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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큰애가 첫영성체를 했다. 미사 중 아이가 처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순간을 지켜보며 나는 거의 오열했다. ‘어흑! 이 장면을 위해 그 고생을 했단 말인가!’ 우리 본당은 첫영성체를 받기까지 과정이 까다로운 편이다.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짧게는 5개월 길게는 8개월간 매주 어린이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기본이고 새벽미사를 포함한 평일미사에 일정한 횟수 이상 참례하며 기도문을 외우고, 성경을 필사하고, 과제를 하고, 교리 시험을 치른다. 매년 30~40명 어린이가 첫영성체반에 들어오는데, 탈락하는 아이는 거의 없고 대부분 완주한다.


다른 지역의 주일학교 이야길 들으니 첫영성체 대상자가 한 명뿐이라 서너 번 정도 일대일 교리 수업을 한 후 온 교우의 환영 속에 첫영성체를 했다고 한다. 8개월 동안 숨 가쁜 과정을 거친 첫영성체와 단기간에 달성한 첫영성체, 그 둘은 은총의 크기가 다를까.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자주 갈등한다. “성당에서까지 엄격할 필요가 있을까?”, “성당이라고 느슨해선 안 되잖아?” 결혼 전엔 괜히 엄격하고 융통성 없는 교사 시늉이었는데 결혼 후 아이들을 성당에 데리고 가려고 구슬리고 협박하는 학부모가 돼보니 교사로서 엄격해지기 어렵다. 다행인 건 내가 어떤 기준을 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신부님이 회칙과 본당 사정에 근거해서 정한 기준을 따르면 된다. 


다만 평교사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조금 유연성을 발휘한다. 주일학교에 등록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에 처음 온 어린이가 참여 의사를 밝혔을 때, 일단 행사에 참여하도록 하고 가급적 빨리 주일학교에 등록하도록 안내하는 식이다.


성당에 오는 아이가 갈수록 줄고 있는 시대에 등록을 했든 안 했든 행사에 참여하고, 첫영성체도 기준을 완화하는 것이 좀 더 보편교회다운 방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탓일까.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귀하게 여기기 어렵단 생각이다. 많이 내어놓은 만큼 많은 것을 얻는 건 당연한 이치다. 1을 내놓으면 고작 1을 얻지만 10을 내놓으면 무려 100을 얻기도 하는 게 삶 아니던가. 어쩌면 이것은 신앙의 신비를 깨닫지 못한 자의 어리석은 셈법일지도 모른다. 하느님은 아주 커다란 은총을 때론 아무 힘들이지 않고도 얻게 하신다. 나 역시 값없이 받은 은총으로 지금껏 살아오고 있다.


내년에 첫영성체 반에 들어가는 둘째는 엄마의 호들갑 때문에 다소 긴장한 상태다. 울상인 얼굴로, 지금도 성당에 자주 가는데 3학년이 되면 얼마나 자주 가는 거냐고 묻는다. 이번 주는 주님의 기도, 다음 주는 식사 후 기도를 외우자고 했더니 아이가 첫영성체를 꼭 해야 하냐고 반문한다. 아이는 앞으로 몇 번쯤 더 같은 말을 할 거다. 가뜩이나 잠이 많은 아이이니, 새벽 미사를 드리는 날엔 짜증을 내겠지. 


그런 지난한 과정 끝에 마침내 처음으로 성체를 모시는 날, 나는 또 미사 중에 오열할 거다. ‘아직 막내가 남았다’ 하면서. 울 땐 울더라도 잊지 않으려 한다. 복음을 필사하고 기도문을 외우는 동안 이미 우리 일상의 무게중심이 주님에게로 기울어졌음을. 그분이 우리 삶에 깊이 관여하도록 스스로 몸을 낮추는 과정이었음을.



글 _ 정신후 블라시아(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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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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