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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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의 ‘최애’가 예수님이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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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 교리 시간, 종이에 뭘 적는 활동을 하고 나서 “활동지는 집에 가져가렴~” 말해도 아이들은 늘 종이를 놓고 간다. 교리실 바닥에 나뒹구는 종이를 주워 정리할 때면 낙서와 함께 웬 이름들을 볼 수 있는데 낯선 그 이름을 통해 요즘 아이돌 그룹의 최고 인기 멤버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다. 6학년 아이들의 ‘덕질’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청소년기 덕질의 순기능에 대해서라면 이미 수많은 논문이 존재할 만큼 효과가 입증돼 있다. 나 역시 서태지를 통해 삶의 재미를 알았고 사회성과 행동력을 길렀기에, 연예인을 향한 아이들의 팬심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말할 때 생기가 도는 아이들의 얼굴은 참 예쁘다. 그리곤 바람이 생긴다. 아이들이 팬심 일부를 떼어다 예수님께 드렸으면 하는 바람. ‘투어스’를 덕질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덕질할 순 없을까?


종교는 덕질 중에서도 가장 역사가 깊은 덕질이다. 고대 구석기 시대부터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과 의례가 있었다. 가톨릭 신자는 우리의 최애인 예수님의 탄생과 구원 역사를 이천 년 넘게 기념하고 있다. 그의 말과 행적을 다룬 책인 성경을 읽고 공부한다. 묵주, 성상, 성화같은 다양한 굿즈도 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예수님이 살았던 곳을 방문하기도 한다. 


여러모로 종교와 덕질은 닮았지만 그 안에 담긴 열정에는 차이가 있는데, 하느님을 향한 마음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를 향한 팬심보다 훨씬 소극적으로 느껴진다. 특히 팬덤 문화가 발달한 청소년기에서 그 차이는 더욱 분명해지는데, 박보검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소녀는 많이 봤어도 예수님이 내 최애라고 말하는 소녀는 보지 못했다. 청소년기엔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게 중요한데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 않으니 그러하리라.


그래서 우리에겐 전례가 필요하다. 전례는 덕질을 지속하는 힘이 된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거행되는 미사와 십자고상과 봉헌초, 묵주, 물과 기름…. 게다가 오묘한 향냄새라니! 그 안에서 나는 낯선 편안함을 느낀다. 다소 엄격해 보이는 예식을 통해 우리가 지상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천상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한다. 


유명인이 팬미팅 같은 행사를 주기적으로 개최해서 팬들을 결속시키고 열정을 새롭게 하듯이 우리도 거룩한 의식에 참례함으로써 복음을 깊이 받아들이고 구원 사건을 기념할 수 있다. 특히 영성체는 내 최애를 향한 사랑에 사로잡히는 결정적 순간이다. 멀고 고귀한 어딘가에 있는 줄만 알았던 나의 최애가 살과 피가 있는 존재로 현존하시는 것도 모자라 나와 하나가 되신다니. 내가 죽어서 하느님 나라에 가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서도 그분과 함께 거룩해질 수 있다니.


지난봄 부활 행사 때 우리 주일학교는 파티를 열었다. 맛있는 간식을 먹으면서, 성경에 드러난 예수님의 행적을 담은 성화에 스티커를 붙여 투표하고(최애 투표), 예수님 등신대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포토존). 청소년에게 익숙한 ‘연예인 생일카페’를 모티프로 삼아 예수님을 덕질하는 시간을 만들어본 것이다. 아이들의 최애가 예수님이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다들 지독한 덕후가 되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주일학교만큼 즐거운 곳도 없을 것이다. 덕후끼리 매주 모여서 미사드리고 노래하고 밥 먹고 최애 이야기를 한다니, 이렇게 신날 수가!



글 _ 정신후 블라시아(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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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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