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강대학교의 성탄 구유 주제는 인공지능(AI)이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처럼 성모님 품에 안긴 아기 예수님의 손가락은 로봇의 손가락과 맞닿아 있다. 인공지능도 결국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걸 표현했다고 한다. 밤하늘에는 별 대신 컴퓨터의 언어인 ‘이진법’ 숫자 0과 1이 빛나고 있다. 정말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교회도 이 거대한 흐름을 외면할 수 없음을 느낀다.
인공지능이 빠르게 세상을 곳곳에 스며들며 우리 삶을 바꾸고 있다. 인공지능이 발달한 미국이나 중국에서는 대량 실업 이야기가 들려온다. 검색도 이제는 추억이다. 알고 싶은 것은 인공지능에게 대화하듯 물어본다. 인공지능이 운전하는 자동차가 서울 도심을 달리고, 인공지능이 소설과 시를 쓰는 시대. 이런 인공지능의 시대에 또 하나 사라져 가는 것이 있으니 잡지다.
1970년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로 월간 「샘터」를 창간한다. 그 후 아들 김성구(프란치스코) 대표로 이어진 샘터는 한때 월 50만 부까지 팔릴 정도로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렇게 샘터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에는 당대의 내놓으라는 글쟁이들의 글을 샘터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원한 청춘 고 피천득(프란치스코) 선생을 비롯해 장애를 안고 희망을 노래하던 장영희(마리아) 교수와 이해인(클라우디아) 수녀가 샘터에서 수필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물했다. 최인호(베드로) 작가는 자전적 연재 소설 ‘가족’을 무려 34년 동안, 법정 스님은 ‘산방한담(山房閑談)’을 16년 동안 샘터에 연재했다.
그 외 시인 정호승(프란치스코), 소설가 김승옥·정채봉(프란치스코)이 샘터에서 일했고,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이 샘터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자신의 필력을 갈고 닦았다. 화가 장욱진·천경자(데레사) 등 대가들이 기꺼이 샘터 표지와 삽화를 그려주었다. 여기에 독자들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가 어우러져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이 마르지 않는 샘처럼 샘터에 흘러넘쳤다.
그런 샘터가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인한 경영상 어려움으로 내년 1월을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다. 사실상 폐간이다. 서울 혜화동의 대학로 명물이었던 붉은 벽돌 사옥을 팔면서까지 샘터 발행을 이어갔지만, 매년 수억 원의 적자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월간지 샘터를 받아들었던 사람들 손에는 이제 스마트폰이 있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뉴스와 동영상을 소개하는 시대에 샘터의 앞날은 정해져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렵게 위기를 극복했는데 다시 곁을 떠난다니 허탈하다.
성탄이다. 올해 성탄에는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것들에 눈길을 둔다. 누구는 문명사적 거대한 전환이라고 부를 정도로 빠르게 세상이 변하고 있지만, 소중한 추억의 때가 묻어있는 것들이 사라져 가는 건 마음을 사무치게 만든다. 한때 우리 가슴을 뛰게 만들던 것들이 이제는 고물 취급받는 것 같아 속상하다.
그래도 변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성탄 구유에 로봇이 보인다고 해도,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가장 낮은 곳의 구유에 오셨다는 기적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 구유를 보고 두 손 모아 비는 우리의 기도는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모든 이에게 아기 예수님의 은총이 가득하길 기도한다. 성탄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