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선교사들이 ''성 요셉''을 중국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정해
가톨릭교회는 매년 3월을 ‘성 요셉 성월’로 지낸다. 특히 한국을 포함한 극동(동아시아·동남아시아) 교회에서 성 요셉이 차지하는 위치는 각별하다. 1870년 복자 비오 9세 교황이 성 요셉을 ‘보편 교회의 수호자’로 선포하기 무려 200년 전부터 극동의 선교사들은 박해의 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선교지를 요셉 성인에게 의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중국·대만·베트남·태국 교회는 고유 전례력의 성 요셉 대축일(3월 19일) 명칭에 ‘자국의 수호성인(주보)’임을 명시하고 있다. 성 요셉이 이토록 일찍 ‘극동의 수호자’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17세기 선교 현장에서 이뤄진 두 갈래의 결단이 있었다.
첫 번째 흐름은 파리외방전교회(MEP) 소속 교황 파견 선교사들로부터 비롯됐다. 1659~1660년 설정된 통킹·코친차이나·남경대목구는 베트남과 중국 그리고 조선(한국)을 아우르는 광활한 구역이었다. 초대 통킹·코친차이나대목구장 프랑수아 팔뤼 주교와 랑베르 드 라 모트 주교는 임지 진입 전인 1664년 시암(현 태국) 왕국 수도 아유타야에서 첫 시노드를 열고 선교 사업을 성 요셉에게 봉헌했다.
그 결과 1665년 아유타야에 세워진 성당과 함께 첫 신학교 이름도 ‘성 요셉 신학교’(말레이시아 페낭 신학교의 모태)가 됐다. 1855년 한국 교회 첫 신학교 역시 ‘배론 성 요셉 신학당’으로, 그 이름과 정신을 계승했다. 1670년 베트남 통킹에서 열린 첫 시노드 역시 “아유타야 헌장에 따라 성 요셉을 이 왕국의 수호성인으로 추대한다”고 명시하며 이 전통을 확립했다.
또 다른 갈래는 1668년 중국(청나라) 광주 유배지에서 시작됐다. 당시 대박해로 연금된 여러 수도회(예수회·도미니코회·작은형제회) 소속 선교사 20여 명은 40일간의 회의 끝에 만장일치로 성 요셉을 중국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선출했다. 헤로데 왕의 칼날을 피해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이집트로 피난했던 요셉의 침묵이 박해받는 중국 교회의 처지와 닮았기 때문이리라.
이같은 극동 대목구장들과 선교사들의 청원에 따라 복자 인노첸시오 11세 교황은 1678년 8월 17일 성 요셉을 중국과 주변 국가(한국 포함)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한국 교회 역시 이 기조를 이어받아 초기부터 성 요셉을 모셨다. 1831년 중국 북경교구에 조선대목구로 분리 독립된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1841년 제2대 조선대목구장 성 앵베르 주교의 청원으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가 새 수호성인이 됐을 때에도,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요셉 성인을 ‘공동 수호자’로 함께 모시라는 조건을 달았다. 1892년 한국에 세워진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중림동약현성당이 성 요셉에게 봉헌된 이유이기도 하다.
2018년부터 전례력 개정에 따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명칭’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단독으로 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성 요셉은 360여 년 전부터 극동 선교 현장의 든든한 방패였으며 한국 교회의 태동을 지켜준 ‘아버지’로 남아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