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60년 동안 가난한 이들을 도운 푸른 눈의 한국인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안광훈 신부의 장례미사가 24일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됐습니다.
미사를 주례한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사제이자 선교사, 가난한 이들의 이웃으로 산 안 신부의 삶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고 전했습니다.
1941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태어난 안 신부는 사제가 된 지 1년만인 1966년 대한민국 땅을 밟았습니다.
당시 한국은 6·25전쟁 후 온 국민이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던 시절이었습니다.
안 신부는 1960년대 원주교구 사직동과 정선 등지에서 농민들과 탄광촌 신자들을 돌봤습니다.
고리대금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위해 1972년 정선신용협동조합을 설립했으며, 아픈 이들을 보듬고자 성 프란치스코 의원을 개원했습니다.
1980년대엔 서울 목동으로 사목지를 옮기게 된 안 신부.
안 신부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재개발이 급속도로 추진되면서 안양천 변에 살다 쫓겨난 철거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들과 함께 철거 반대 운동에 나선 안 신부는 1990년대에는 미아6동으로 옮겨 철거 위기에 몰린 주민들과 연대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는 훗날 ‘삼양주민연대’가 되는 서울북부실업자사업단 강북지부를 맡아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섰습니다.
안 신부의 삶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공동체에 귀감이 됐습니다.
안 신부는 1985년부터 6년 동안 선교회 초대 신학원장으로서 한국인 신학생 양성에 힘썼습니다.
후배 사제들은 “양 냄새 나는 목자이자 선교사, 가난한 이들의 이웃으로서 안 신부 삶 자체가 보고 배울 점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평생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한 안 신부는 2012년 서울시 사회복지대상 수상을 계기로 ‘서울시 명예시민권’을 취득하게 됩니다.
2014년엔 아산사회복지재단 대상 수상 후 상금을 다시 가난한 이웃을 위해 전액 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피부색과 눈빛은 달랐지만 안 신부는 늘 한국인이 되고 싶어 했고, 한국 땅에 묻히길 바랐습니다.
안 신부의 작은 소망은 2020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한국 땅을 밟은지 54년 만에 이뤄졌습니다.
정순택 대주교는 장례미사 강론에서 “가난한 이들의 얼굴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한 안 신부의 삶은 한국 교회와 사회에 큰 감동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정순택 대주교 / 서울대교구장>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을 안광훈 신부님께서는 소중히 가꾸고 키우다가 큰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그 열매는 우리 서울대교구와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큰 감동으로 남아 있으며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진리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후배 사제 김종근 신부는 고별사를 통해 평생 가난한 삶을 몸소 실천해 모범이 돼준 안 신부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김종근 신부 /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전기장판도 에어컨도 없이 살아가시면서 검소하고 가난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당신의 삶 전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셔서 많이많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