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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꿈CUM] 교회사의 숨겨진 한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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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위 성지. 다블뤼 주교는 1845년 10월 12일, 새 사제인 김대건 신부와 함께 조선 땅 나바위에 도착했다.


코로나 상황이 안정된 요즘,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해성사는 잘 보면 하느님과 따스한 화해의 기운이 온 마음 안에 가득 채워져, 다시금 신앙인으로서 기쁨을 간직한 채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삶의 충만한 기쁨을 가지고 싶은 마음은 신앙의 선조들에게도 엿볼 수 있답니다. 이에 대한 사례로 조선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다블뤼(Daveluy Marie Antoine Nicolas) 신부님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눕니다.

다블뤼 신부님은 1845년 10월 12일, 새 사제인 김대건 신부님과 함께 조선 땅 나바위에 입국하였고, 1857년 3월 25일 조선 제4대 교구장이신 성 베르뇌 주교님으로부터 부주교로 서품을 받습니다. 그 후 1866년, 병인박해가 발발하고 베르뇌 주교님이 1866년 3월 7일 새남터 형장에서 순교하시자, 다블뤼 부주교님은 이내 곧 조선 제5대 교구장이 되셨지만, 나흘 뒤 1866년 3월 11일 체포되어 1866년 3월 30일 충청도 수영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순교하셨으며, 지금은 천상에서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죠.

1847년 초, 다블뤼 신부님이 조선에 입국한 지 1년 반 정도가 지난 즈음, 공소 방문과 성사를 주러 다니셨을 때입니다. 조선에는 100여 년 동안 천주교 박해로 인해, 신자들은 첩첩산중이나 계곡 등에서 작은 마을, 즉 교우촌을 이루며 신앙을 지키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선교사는 성사를 주기 위해 신자들이 있는 곳을 찾아 이 계곡, 저 산길을 걷고, 또한 눈길을 헤치거나 질퍽한 빗길을 걸으며 공소를 방문해야만 했습니다. 이 일은 사실, 너무나도 힘겨운 일이었지요. 하지만, 다블뤼 신부님은 1839년 박해 때 세 분의 선교사, 즉 앵베르 주교님, 모방 신부님, 샤스탕 신부님이 순교하신 후 몇 년 동안 사제가 없었기에 신자들은 성사를 받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신자들 역시, 6년 만에 또다시 사제가 입국했다는 사실과 신자들을 찾아다니며 성사를 주신다는 소식을 듣고 큰 기쁨을 간직하며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었죠.

다블뤼 신부님은 며칠 동안 공소 방문을 하는 중 중간중간, 주막에 머물면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데, 이때는 사람들에게 신부님의 모습이 노출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우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던 다블뤼 신부님은 묵고 있던 지역에서 어떤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는지, 거리마다 포졸들이 돌아다니고 있음을 눈치챕니다. 그래서 쉽사리 이동할 수 없어서, 신부님은 거의 한 달 동안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을 그토록 기다리던 신자들은 자칫 신부님을 만나지 못할 상황에 놓였음을 알게 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오랫동안 신부님 만나기를 학수고대했던 신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다블뤼 주교님이 숨어 지내던 곳으로 찾아간 것입니다. 이 장면을 다블뤼 신부님은 이렇게 묘사해 놓았습니다.

“곧 많은 수의 교우들이 제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습니다. 젖먹이 아기들을 데리고 온 여교우들, 노인들, 그리고 젊은이들이 성사를 받기 위해 이틀, 사흘, 엿새, 심지어 여드레 동안 눈과 추위를 무릅쓰고 산을 몇 개 넘는 여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감행한 것입니다. 제 곁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상당히 지쳐있었지요. 특히 여교우들은 발이 붓고 살갗이 벗어졌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신부 곁에 도착하자 모든 고통이 멎었습니다. 모두 제 발아래 쓰러져 눈물을 쏟아냈고, 고해성사를 통해 평화를 되찾고는 기쁜 마음으로 다시 먼 길을 떠나 돌아갔습니다. 많은 교우가 예전에 신부를 본 적이 없는 신입 교우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온 교우 수가 이 백몇 명이었습니다. 흥분된 제 마음이 어땠을지, 제 심정을 헤아려보세요.”

이 장면을 떠올리면서 눈가에 눈물이 고입니다. 신자들은 신부를 만나서 자신의 죄를 고백한 후 얻게 되는 영적인 기쁨 앞에서 추위나 굶주림, 야생동물의 위협 등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사를 본 후, 자신들이 돌아온 길을 그대로 다시금 걸어가는 신자들의 모습. 또다시 한 장면, 한 장면을 떠올려봅니다. 하루 이틀 넘어 몇 날 며칠을 걷고 또 걸었기에 발 껍질이 다 벗겨졌을 노인들, 젖먹이가 딸린 아낙네들, 사제를 본 적이 없는 신입 교우들의 모습. 성사를 받기 위해 길을 걷는 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고, 다시 돌아갈 생각을 했으며, 나이 혹은 건강상의 타당한 이유 등으로 걷기를 포기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끝까지 신부를 찾아 만나서 성사를 보려는 신앙 선조의 모습은 외국인 선교사의 마음을 움직였고, 신부님은 이 경험들을 통해 21년 동안 조선에서 헌신적인 사목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성사를 받기 위해 생명을 걸었던 교우들의 신앙을 위해 헌신적으로 사목활동 했던 사제의 모습, 그러한 사제의 모습에 더 큰 감동을 받아 죽기까지 신앙을 지켰던 이 땅의 신앙 선조들. 좋은 사제는 좋은 신자들이 만들고, 좋은 신자들은 좋은 사제를 닮아가는 변함없는 진실! 눈을 감고 한 번 더 묵상해 봅니다.  



글 _ 강석진 신부 (요셉,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1988년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 입회, 1997년 종신서원을 했으며, 1998년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서강대학교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가톨릭대학교에서 역사 신학을 전공했다. 현재 전주교구 내 ‘개갑 순교성지’(전북 고창 소재)에서 성지 담당 소임을 맡고 있다. 저서로 「강석진 신부의 인생 수업」(가족편, 관계편), 「순교, 생명을 대변하는 증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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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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