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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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복 입으니 세상 욕심 티끌 같아라

기자가 체험한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수도생활 체험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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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 마련한 제28차 수도생활 체험학교에서 참가자가 수사의 도움으로 수도복을 입고 있다.
 


   8월 14일부터 3일간 수도복을 입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경북 칠곡군 왜관읍)이 마련한 제28차 수도생활 체험학교에서다. `참된 평화를 찾아서`(Pax Benedictina, 베네딕토의 평화)를 주제로 열린 체험학교에는 젊은이 90명이 참여해 삶의 갈증을 채웠다. 올해는 문화관광체육부 지원으로 수도복을 특별 제작, 참가자들은 하느님 주시는 평화 안에 자신을 내맡겼다.

# 세속의 옷을 벗고 새로 태어나

 눈같이 하얀 수도복에 얼굴을 들이 밀었다. 두 팔이 수도복 속으로 따라 들어간다. 어깨에 탁 걸쳐진 수도복이 발목까지 쭉 내려와 다리를 소복히 덮는다.
 "사부 성 베네딕토의 수도규칙 정신에 따라…. 하느님 자녀로서의 삶을 더욱 개선해 나갈 것을 서원합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성당. 입회식에서 초를 봉헌한 후 새 옷으로 갈아입고, 서원장을 정성껏 써내려갔다. 볼펜 하나 넣을 주머니 없는 수도복을 입고 2박 3일간 수도자의 삶이 시작됐다.
 이어 수도자와의 만남 시간. 입회식에서 종신서원식까지 10년이 걸리지만 10분 만에 모든 걸 마치고 잔디 밭에 둘러 앉았다.
 젊은이들은 박근배 신부의 말에 따라, 양말을 벗고 서로의 맨발을 잡았다. 그리고 함께 "아~"하는 소리를 허공으로 내보냈다. 기차 경적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더니 옆사람의 숨소리가 들리고, 고요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곳엔 해야할 일도, 생각해야 할 것도 없었다.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성당 앞 잔디밭에서 젊은이들이 박근배 신부의 지도로 명상 시간을 갖고 있다.
 

# 삶의 몹쓸 열기를 식혀주소서

 이튿날 새벽 6시 15분 수도원 성당. 주섬주섬 수도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종종 걸음으로 성당에 모여든다. 수도복은 아직 적응이 안돼 서로 밟고 밟히기 일쑤.
 70여 명의 수도자들이 부르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고요한 새벽을 깨운다. 젊은이들은 졸기도 하고, 낯선 그레고리오 성가를 따라 불러보기도 한다. 조심스레 내어보는 소리가 입에 착 달라붙지를 않는다.
 이어 수도자들과 함께 하는 명상시간. 1회부터 체험학교를 운영해온 박재찬 신부는 "강 위에 배를 띄워 노를 저어 하느님 앞으로 다가가라"며 묵상기도로 이끌었다. 젊은이들은 하늘에서 오는 좋은 것들을 들이 마시고, 버리고 싶은 욕심과 마음의 짐들을 날숨으로 내보냈다.
 젊은이들은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수도회 생활규칙에 따라, 농장과 양로원, 공예실 등 작업장으로 흩어져 구슬땀을 흘렸다. 기도하고 일하기를 반복하자 삶에 가득차 있던 욕심들은 어느새 잊혀져 갔다.
 이형우(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장) 아빠스는 "기도하고 일하라는 베네딕도회의 생활이 평범해보이고, 또 일하는 시간을 토막내 기도하는 게 비효율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 안에서 하루를 봉헌하며 산다"고 말했다. 이어 "하느님을 느끼고, 기도와 노동의 기쁨을 체험하며 더 중요한 삶이 있다는 걸 깨닫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 "모두 수도복을 입혀 놓으니 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다"고 말해 웃음이 터졌다.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직장인 민경훈(요셉, 33, 인천교구 원당본당)씨는 "수도복을 입은 순간, 딴 사람이 되는 느낌이 들고 동시에 십자가를 멘 것처럼 무거웠다"며 "벗고 나서 홀가분한 걸 보니 수도복은 아무나 입을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에 치여 살다보니 마음이 돌처럼 굳어졌는데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다시 살아나 두근거린다"며 흡족해했다.
 안성혜(28, 개신교)씨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는 수사님들과 봉사자들의 모습 속에서 참된 평화를 봤다"며 "나를 버리고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참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박재찬 신부는 마지막 날 "마음의 평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용서와 사랑`임을 잊지 말라"면서 "삶의 뿌리가 하느님께 내려지지 않으면 세상 것을 택하게 살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신부는 "우리 시대에 (젊은이들이 느끼는) 아픔과 어려움이 많지만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며 "각자 어둠을 디딤돌로 삼아 하느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화 안에 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세속의 무거운 짐과 욕심들을 수도복과 함께 벗어놓은 젊은이들은 수도자로서의 3일을 가슴에 새기고 다시 삶 속 순례를 떠났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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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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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7장 56절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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