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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두 사람뿐이다. 가로 세로 5m 남짓한 무대는 별다른 장치 없이 텅 비어있다. 조명, 음악도 단출하다.
서울대교구가 운영하는 가톨릭청년회관 `다리`(관장 유환민 신부, 서울 마포구 동교동 소재)의 세 번째 정기공연인 연극 `숨쉬러 나가다`(연출 이영석)는 제목처럼 관객에게 숨돌릴 여유를 준다.
공연은 조지 오웰이 1938년 펴낸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주인공인 45살의 보험외판원 조지 볼링은 두 아이의 아빠이자 여태껏 주택 할부금을 다 갚지 못한 가장이다. 얼마 전 경마에서 딴 17파운드(160만 원 정도)를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것만이 작은 행복이다. 고심 끝에 지친 일상과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가족 몰래 고향을 찾지만 변해버린 고향 마을 모습에 실망감만 느낀다.
공연은 70여년 전 작품을 토대로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대인들의 갈등을 잘 담고 있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 "내가 서 있는 지반과 미래가 흔들리는 느낌"에 괴로워하고, "누군가 내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생각에 숨 막혀 하는 주인공의 대사는 오늘을 사는 관객들의 깊은 공감을 산다.
또 "무엇을 쫓고 있든 잠시 멈추고 크게 숨을 쉬는 것에서 무엇보다 큰 행복감과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조지의 말은 관객에게 `숨쉬는 것`과 `휴식`이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연극은 `자발적 후불제`로 관객들의 주머니 부담도 한층 덜어냈다. 자발적 후불제는 정해진 입장료를 내는 것이 아니라 관람 후 만족한 만큼 자유롭게 관람료를 지불하는 것이다.
연출을 맡은 이영석씨는 "이 연극은 숨돌릴 여유도 없는 오늘날 현대인들의 고충이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적 문제임을 보여준다"며 "관객들이 연극을 보면서 `숨쉬러 나가는 것`은 어떤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공연은 18일까지 계속된다. 문의 : 070-8668-5796 김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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