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아버지께서 하늘로 가신 후 나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할 때에 하느님 아버지가 더 가깝게 느껴지고, 내 바람을 말씀드리기도 전에 이미 알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더 단순한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긴 말씀이 없으셔도 믿고 있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셨던 아버지의 그 신뢰가 그대로 하느님 아버지의 시선이 되어 내 삶을 큰 신뢰 안에서 바라봐 주신다는 것을 늘 마음에 둘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안에서 깊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외부의 그 어떤 혼란스러움이 있어도 잠시 하느님 아버지 안에서 깊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나면 어떤 마음이 되어야 할지 다시 돌아설 수 있게 된다.
땅을 존재로 만난 이후로 내 마음은 수없이 많은 울부짖음의 자리가 되었다. 그러니 나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울부짖음에 대한 응답이다. 예전의 나를 생각해보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매일매일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하게 되는 것은 바로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땅, 흙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었을 때에 나는 다른 존재들의 소리에도 귀 기울이게 되었고, 그들을 마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들을 위해 뭐든지 하고 싶은 마음으로 매일매일을 새롭게 눈뜨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내 삶의 방향이 분명해지고, 더 단순해지고 있다. 누구와 무엇을 말해도 하느님의 부르심과 모든 피조물의 울부짖음에 대한 응답이 되게 하고 있다. 심지어 그것이 외국 땅에서 외국인과 함께하더라도 그 어떤 두려움 없이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게 되었다. 일회적이고 이벤트적인 삶이 아니라 나의 온 삶이 오늘을 위해서 준비되어 졌음을 느끼게 된다.
내가 만나고 있는 많은 분이 이렇게 뭔가에 홀린 듯이 삶을 마주하고 있어 보인다. 누군가는 삼척 땅의 절규에 가까운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며, 매일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그 바다를 위로하기 위해 걷고 있는 분이 계시다. 누군가는 매주 금요일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한 장구를 들고 거리로 나와 지구의 울부짖음을 호소하고 있다. 누군가는 마지막 남은 새만금의 수라 갯벌과 그 땅에 의존하고 있는 수많은 생명의 울부짖음을 눈물로 호소해가며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다. 누군가는 석탄을 자기 몸에 뒤집어써 가며 ‘석탄 발전 이제 그만’을 외치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눈에 보이지 않게 흘러나오는 방사능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자기 몸을 느끼면서도 미래 세대를 위해 ‘사랑한다면 원전은 아닙니다’를 외치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폭우로 판잣집이 쓸려갈 때에 수도복을 입고도 거침없이 그들과 함께 밤을 새우며 날 밝기를 기다린 이가 있다. 공동의 집 지구의 시급한 상황이 더 심각해질수록 더 많은 분이 이렇게 삶을 마주하고 있어 보인다.
나는 이분들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모세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하는 일들은 모두 모세가 손을 들어 백성을 살리기 위해 주님께 청하는 그 일이 된다. 만약 이런 분들을 만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와 함께하여 그들이 하느님께 청하며 들어 올린 두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받쳐주는 일일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사람이다. 그런데 이 하느님의 사람은 자기 자신이 먹고사는 그 일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또 자신의 구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양들을 돌보도록 은사를 받게 된다. 이들은 기회가 좋든 나쁘든 해야 할 일을 계속해나가는 사람들이다.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고 있다. “주님, 저희 모든 피조물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살려주소서 주님!” 그런데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바로 그 선택된 이임을 말씀하고 계시다. 바로 우리 자신이. 아직 마음이 완고하지 않다면 그분의 시선을 느껴보라, 그리고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여 보라. 바로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이들이다. 아멘!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