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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주말의 늦은 오후 충북재활원 앞마당 농구장에서 체육활동을 하는 여성 발달장애인들. 이들은 여성 장애인들만 8개의 그룹홈 공동체를 꾸려 한 방에 서너명씩 살아가고 있다. |
안타까운 사연들지난 1월, 청주교구 장애인 복지 시설인 충북재활원 마리아의 집에서만 37년을 살았던 발달장애인 이 마리아(50)씨는 37년간 살았던 정든 시설을 떠났다. 노령화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보호작업장 요셉베이커리 카페에서 늘 밝게 웃으며 열심히 일했지만, 4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체력이 떨어져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다. 발달장애인들은 비장애인보다 15년에서 20년은 먼저 노화가 시작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자 요양원에서 충북재활원으로 연락이 왔다. 이씨의 혈압 수치가 60 이하로 뚝 떨어지는 데다 폐가 좋지 않아 임종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는 말에 김성우(충북재활원 마리아의 집 원장) 신부는 서둘러 병자성사를 주러 요양원으로 향했다. 이씨는 다시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결국은 일주일 뒤 세상을 떠났다.
뇌전증(간질)으로 평생 고생했던 충북재활원 요셉의 집 송 요셉씨도 노인요양원으로 갔다가 지난 5월 37세의 젊은 나이로 선종했다. 요셉의 집에서만 20년 넘게 살았지만, 그 역시 노화가 시작되자 요양시설로 가야 했다. 하지만 송씨 같은 지적장애인들은 사람들을 때리거나 무는 등 도전적 행동을 하기에 때로는 요양원에서 이들을 돌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는 결국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야 했다.
탈시설화로 설 자리 잃는 시설 정부가 탈시설화 정책을 본격화하면서 충북재활원 같은 중증장애인 수용 시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탈시설 로드맵’ 발표 이후 30인 이상 장애인 복지 시설은 인ㆍ허가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100인 이상 시설은 정부가 계속 모니터링하고, 시설 기능 보강도 30인까지만 해줘 큰 시설은 어려움이 많다. 지난 9월 말 현재 남녀 중증 장애인만 195명에 이르는 데다 중ㆍ고령 장애인이 절반을 넘는 충북재활원은 이들을 돌볼 시설 보강이 절실하다.
“학계에선 발달장애아의 경우 40대 중반이면 노령세대라고 봅니다. 최근 들어 발달장애아들 부모의 자살사건이 계속되는데, 이분들이 장애아들을 더는 돌보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는 사인입니다. 지역사회에서 부모에게만 보호를 떠맡기고 장애아들을 방치한 부작용인 셈이지요. 또한, 시설에 살던 장애인도 한 번 노인요양원에 가면 돌아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가장 좋은 건 그동안 살아온 시설에서 계속 사는 것이지만, 장애인시설은 노인요양시설이 아니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최성일 사회복지사, 마리아의 집)
시설의 단점 보완하며 독립 보장 충북재활원은 그래서 탈시설의 현실적 대안으로 ‘그룹홈(Grouphome) 공동체’를 꾸리고 있다. 4~20명당 1개씩 그룹홈을 꾸려 살아가게 함으로써 한꺼번에 수십 명씩 수용되는 대형시설의 단점을 보완했다. 마리아의 집 여성 원생들 97명은 8개, 요셉의 집 남성 원생들 98명은 8개 등 총 16개의 그룹홈을 만들어 살아간다. 장애 정도에 따라선 아예 시설 외부로 내보내 5개의 그룹홈을 독립 분가시켰다. 시설 내에 새로 짓는 건물은 그룹홈을 아파트 형식으로 꾸며 1인실, 2인실, 3인실(와상 환자)을 둠으로써 시설 내에서도 독립적 공간을 보장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김성우 원장신부는 “유엔 장애인 권리협약 19조는 장애인이 자신의 주거 형태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하라는 취지이지 시설을 없애라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탈시설’ 정책은 유엔의 장애인권리협약을 극단으로 몰고 간 것이기에 새로운 장애인 복지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중요한 건 중ㆍ고령 발달장애인들이 존엄한 여생을 보내고 존엄하게 임종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라며 “가능하다면 지자체에서 잘 운영되지 않는 노인요양시설이 있다면 그 시설을 중ㆍ고령장애인들이 노년을 보낼 요양시설로 특화하는 방법도 있다”고 밝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