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회의 총회 참석 때문에 독일에 잠시 다녀오게 되었다. 그런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독일로 곧바로 가지 못하고 상공을 돌아서 가게 되어 거의 만 하루를 하늘에서 지냈다. 하늘 아래에 펼쳐진 땅을 보니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 태양, 구름, 산, 바다, 숲,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비가 내리는 상공을 지나니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조형물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장엄하게 무지개가 드리워졌다. 너무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항상 평면으로 봐왔던 무지개 사이로 지나가게 되다니 정말 놀라웠다. 마음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한 희망적 메시지를 보여주시는 것으로 다가왔다. 노아에게 보여주신 계약의 끈처럼 오늘 우리의 위기에 보내주시는 희망의 끈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리고 한참을 날아서 유럽의 상공 즈음 왔을 때에 나는 정말 희망적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상공에서는 엄청난 불빛이 마치 용암이 흐르는 듯하게 느껴질 정도였다면, 독일의 경우는 엄청난 수의 풍력발전기가 눈에 들어왔다. 한 곳에만 밀집해 있는 것이 아니라 땅 전반에 걸쳐 가로등 놓듯이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 장면 또한 너무나 경이로워서 카메라에 담았다.
실제로 독일 수녀님들로부터 듣게 된 독일의 에너지 정책은 실로 놀라웠고, 이에 직면하는 독일인들의 자세 또한 놀라웠다. 독일은 풍력발전으로 에너지 소비의 80를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원전 가동을 멈췄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대안 에너지를 찾는 정부의 구체적이고 신속한 행동이 우리나라와 너무나 다르게 다가왔다. 독일 가을 날씨는 한국의 가을보다 조금 더 낮은 쌀쌀함이 느껴졌다. 점점 겨울로 향하는 것을 체감하면서도 사람들은 외투를 하나 더 입지 보일러 가동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전열기로 난방하기보다 옷을 하나 더 입는 것으로 대체했다. 또 거리를 지나니 대부분이 자전거를 이용해 이동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물론 중심 도시의 모습은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독일인이 ‘에너지 정책’에 자신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안다고 독일 수녀님이 말씀해 주셨다. 쌀쌀하지만 아무도 보일러를 틀어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전기요나 전열기구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모두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중요한 한 사람임을 일상 안에서 의식하게 되었다.
일례로 거리를 지나가다가 세 살도 안 된 아이가 두발자전거를 타는 연습을 하는데, 그 형으로 보이는 아이가 도와주고, 부모는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는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까르르 웃어가며 연습했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아마 어림도 없었을 장면이었다.
특별히 토요일 오후 2시 정도에는 거리의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 주일까지 문을 닫는다고 한다. 그러니 거리에는 가족 단위로 산책하는 사람들만 보였다. 주말이면 모두 가족과 함께 지낸다고 한다. 거리에서 보이는 집들이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모두 작은 정원을 돌보고 있었다. 주말에는 당연히 자기 집의 정원을 돌보는 것이 일이라고 한다. 정말 나에게는 ‘다른 나라 이야기’로 다가왔다. 한국에서 시민들과 함께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새로운 정책을 마련해 달라고 외쳤던 많은 순간과 독일의 에너지 정책으로 국민들이 따르고 있는 검소한 생활방식이 대비되었다. 그러면서도 이것은 비단 정치인들의 생각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과도 연결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적당히 쌀쌀한 정도를 견딜 수 있을까, 적당히 불편한 생활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까? 정치인들의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개개인들의 삶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더더군다나 각 시대의 표징으로 하느님께서 드러내시는 세례받은 신앙인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감미로운 언어가 아니라, 우리 삶 안에서 이루어지는 말씀이다. 갈림길에서 우리 일상의 선택이 중요한 때이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도록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까?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