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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체험기] 버림받은 시간, 버림받은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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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가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뭐니뭐니 해도 미사이다. 따라서 신부가 가장 바쁜 날은 당연히 토요일과 주일이다. 어지간한 본당은 이틀 동안 평균 4~5대, 큰 본당은 6~7대 주일미사가 있는데, 거기에 장례나 혼배가 생기면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힘든 날이 된다.

그래서 보좌신부였을 때 가장 편하고 좋은 시간은 바쁜 일정을 마무리하고 숨 고르는 주일 오후 시간이었다. 그런 만큼 만에 하나 주일 오후를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그날 저녁미사는 정말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건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혹시 마음에 안 들고 미운 신부님을 골탕 먹이고 싶다면 모르는 척 하고 주일 오후에 전화해서 자꾸 만나자고 해보라. 열에 아홉은 손사래를 칠 것이다. 대신 본인도 상당한 데미지(?)를 감수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어떻든 이런 의미에서 주일 오후, 특히 가장 나른해지기 쉬운 2~3시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시간이다. 신자들이 성당에 오지도 않을뿐더러, 신부도 피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환영받지 못하는 시간에 주일미사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미사는 신부에게나 신자에게나 무척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년 이상 주일 오후 3시에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청년 봉사자들과 함께 성당에서 미사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만든 결과였는데, 본당 소속이 아닌 관계로 본당 신부님의 허락을 받아 가장 방해가 되지 않는 시간에 미사를 하게 되었다.

내가 먼저 하겠다고했지만, 솔직히 처음엔 힘들었다. 기운도 빠지고 의욕도 나지 않고 ‘과연 이 미사를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하지만 작년 사순시기를 시작하면서 문득 “버림받은 시간, 버림받은 예수님”이라는 주제가 생각났다.

우리 상식으로 주님은 오후 3시에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 세상과, 동족과, 제자로부터 버림받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시간이며 본당에서는 실용적이고 사목적인 이유로 버려진 시간이다. 그런데 우리는 버려진 그 시간에 버림받은 예수님과 함께 미사를 한다! 물론 꿈보다 해몽이다. 하지만 어차피 삶이란 것이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 깨닫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날 이후로 한 번도 이 미사가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지금도 3시 미사는 절대 실용적이지 못하다. 봉사자들은 황금 같은 주일 오후를 전부 반납해야 하고, 미사 끝나는 오후 4시는 저녁을 먹기에는 이르고, 영화 보기에는 어색하고, 야외로 나가기엔 늦은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난 지금은 100여 명의 신자가 함께하는 소박한 미사가 됐다. 신심이 깊은 분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어려운 시간에 모인 교우들이 존경스럽고, 봉사자들이 고맙다. 그리고 함께 해 주신 주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미사를 봉헌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싶다. 버림받은 주님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마음의 위로를 얻기 때문이다.

“버림받은 주님 때문에 우리는 선택 받았습니다!”

강진기 신부 (대구대교구 1대리구 청년담당)

그동안 집필해 주신 강진기 신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8-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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