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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체험기] 내게 소중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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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두 번 놀란다. 우선은 내가 맡고 있는 다양한 분야에 놀라고, 다음은 “어떻게 그 많은 일을 다 할 수 있냐”며 다시 되물어온다.

내가 맡은 일은 참으로 많다. 전주교구 노동, 농민, 환경, 공소, 이주사목 그리고 민족화해위원회, 정의평화위원회, 여기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일까지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 많은 일을 한 사람이 하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게 주어진 소임이고, 다른 동료 신부가 일부를 맡아줄 때까지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항상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것도, 듣는 것도, 하는 것도, 모두가 그들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번은 베트남에서 시집온 지 한 달된 여성이 우리 사무실에 찾아왔다. 남편이 500만 원을 주면서 이혼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네 번째 결혼이며, 이미 내연녀도 있다 했다. 그 사연을 듣고 나서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그리고 그녀에게 미안했다. 나 스스로도 ‘신부’이기에 앞서, 한국 남자라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더 화가 나고 답답한 것은 그녀가 이혼을 반대하고 나선 점이다.

이유인 즉슨, 베트남 친정으로 매달 40만원을 보내야 하는데, 이혼하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만약 이혼을 하더라도 한국에서 꼭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마음이 답답했다.

또 한 번은, 우리가 운영하는 무지개작은도서관에서의 일이다. 이곳에서는 매월 마지막 금요일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어느 금요일. 음악회 준비를 위해 도서관을 찾았는데, 그 곳 본당신부로 있을 때 보지 못했던 새로운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보는 순간 반갑기 보다는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옷은 얼마나 세탁을 안했는지 묵은 때가 가득했고, 손과 얼굴에는 땟국물이 줄줄 흘렀다. 발도 맨발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왜 씻지도 않느냐”고 차마 묻지 못했다. 그 동네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가정 사목방문을 가서보면, 단칸방에 한 식구가 모여 살거나 독거노인과 함께 지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나은 맞벌이 부부 가정도 집안 모양새는 아이들을 돌봐줄 여건이 되지 못한다. 이래저래 마음이 답답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란 말이 있다. 얼마 전부터 이 말이 가슴에 맺히곤 한다. ‘우선적 선택’이란 말은 가슴에 확 꽂힌다. 우리 주위엔 아직도 가난한 사람들이 참 많다. 우리가 그들을 보려하지 않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있는 법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사목자인 나는 물론 독자 여러분들, 우리 모두를 하느님께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돕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나는 소중한 그들을 택했다. 그리고 오늘도 그들과 함께 일하고, 그들을 위해 일하며 행복해 한다.

송년홍 신부 (전주교구 이주사목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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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8-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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