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8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군종사제가 쓰는 병영일기] 군종신부로 사는 재미(?)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군종신부로 살아가는 재미(?) 중에는 위문을 핑계 삼아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것이지요.^^ 지난주 월요일에는 상륙작전을 수행하는 해병대원만이 탈 수 있는 수륙장갑차를 타고, 금요일엔 바다 위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해군의 해상 초계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의기양양 초코파이 한 박스를 들고….

수륙장갑차

산더미처럼 커다란 수송선에서 바다로 퐁당 빠져들어 한참을 헤엄치다 육지에 상륙하게 되면 모래밭이건 자갈밭이건 상관없이 달려가는 장갑차. 문이 열리면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달려가는 해병들을 토해놓는 장갑차….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에도 등장하는 그 수륙양용장갑차. 기대를 잔뜩 하고 묵직하게 생긴 그놈(?)을 타게 되었습니다.

‘삐이익’ 신호음과 함께 문이 닫혔습니다. 창문이 없어 앞사람 얼굴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캄캄했습니다. ‘어라? 이게 뭐야~. 감옥이 따로 없네?’ 요란한 굉음과 함께 장갑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덜컹덜컹 움직이는 것이 마치 경운기를 타는 느낌이었습니다. ‘에이~ 경운기는 어릴 때 가끔 타 보았는데….’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털털거리는 느낌이 점점 약해지더니 배를 탄 것처럼 울렁울렁거리는 겁니다. 수심이 깊어지자 파도를 타고 전진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굉음을 들으며 갑갑한 실내에서 울렁거리며 파도를 타고 있자니 슬슬 속이 메스꺼워졌습니다.

더군다나 연막 시범을 보인다고 연기를 피워대는데 골치가 지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름날 모기 잡는 소독차에서 나오는 그런 연기였습니다. 군종신부 체면에 멀미한다고 빨리 내려달라고 할 수도 없고….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속담 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독 안에 든 쥐’

해상초계기

“그날에 주님께서는 날카롭고 크고 세찬 당신의 칼로 도망치는 뱀 레비아탄을, 구불거리는 뱀 레비아탄을 벌하시고 바다 속 용을 죽이시리라(이사야 27, 1).”^^

‘푸른 바다 위를 멋지게 날며 바다위의 선박과 바다 속의 잠수함까지 다 잡아낸다던데, 혹시 성경에 등장하는 바다 괴물은 레이더에 잡히지 않을까?’

수륙양용장갑차 체험이 그리 신나지 않았던 터라 해상 초계기 체험은 은근히 기대되었습니다. 엄청 비싼 놀이기구를 공짜로 얻어 타는 듯한 기분에 탑승 전 주의사항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신부님이 기도를 많이 하셔서 그런지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좋은 날씨입니다’라는 조종사의 말에 한층 더 기분이 들떴지요. 그러나 이륙 후 구름을 뚫고 지나가는데 비포장 길을 달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수륙양용장갑차의 기억이 떠오르며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훈련 상황이 벌어지자 역시 예감대로였습니다. 바다 위를 닿을 듯 말듯 낮게 날더니 옆으로도 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쪽 날개가 바다에 빠질 것 같은데도 승무원들은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겁니다.

놀이동산 놀이기구 탄다는 생각은 오간데 없고 안전벨트에 꽁꽁 묶인 채로 잔뜩 얼어있었지요. ‘신부님, 괜찮으십니까?’라는 승무원의 말에 그냥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 바다괴물 잡으려 왔다가 오히려 바다괴물한테 잡혔습니다. ㅠㅠ’

그날 이후

주일 아침미사 시작 전에 손하사가 쪼르르 달려와 수단자락에 매달렸습니다. “신부님, 우리 비행기 타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저는 그 앞에 임무였는데….” 하루에 여섯 시간 꼬박 그 괴물같은 비행기 안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비행시간 앞뒤로 세 시간씩 준비와 정리를 하면 그냥 침대에 쓰러질 법한데도 꼬박꼬박 성당을 찾아오는 녀석을 보니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야~ 너 오늘따라 왜 이리 이뻐 보이냐? 오늘 미사 후에 신부님이 너 몸 보신 시켜주마. 뭐 먹고 싶냐? 그리고 일남이도 찾아서 함께 가자. 장갑차 운전하려면 많이 먹어야겠더라.”

김준래 신부(군종교구 충무대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8-05-11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9. 28

시편 17장 15절
저는 의로움으로 주님의 얼굴을 뵈옵고, 깨어날 때 주님의 모습으로 흡족하리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