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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사제가 쓰는 병영일기] 못난이 군종신부

포항의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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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하면 생각나는 것 제철소, 포스코입니다.

한낱 돌덩이에 지나지 않는 철광석들이 여러 과정을 거쳐 우리나라 산업의 근간이 되는 철강제품으로 만들어지는 곳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자동차나 선박들에 사용된 철강제품은 대부분은 포항을 거쳐 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겝니다.

포항하면 생각나는 것 또 하나. 해병. 해병훈련소가 있습니다.

모든 해병은 포항에 있는 해병 교육 훈련단에서 훈련을 받습니다. 6주 동안의 훈련은 천방지축 천둥벌거숭이들을 명령에 복종하는 씩씩한 해병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한낱 돌덩이가 훌륭한 철강제품으로 바뀌어지듯이….

빡빡 깎은 머리로 입대를 하면 기초 제식 훈련부터 유격, 사격, 수영훈련 등등 많은 훈련을 섭렵(?)합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열심히 훈련을 받고 나면 마지막 행군 길에 나섭니다. 새벽부터 저녁 무렵까지 열심히 걷고 나면 빨간 명찰을 가슴에 달게 되는 예식을 거창하게(?) 하게 됩니다.

훈련 기간을 함께 했던 교관들이 훈련병들의 가슴에 빨간 명찰을 직접 달아주며 한 마디씩 하는데 많은 녀석들이 눈물을 글썽입니다. 특히 훈련이 많이 고되었던 녀석들은 더 많이 감동하지요.^^ 소속부대에 가게 되면 더 힘들고, 더 많은 훈련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다 이뤄낸 듯한 표정들을 짓습니다.


재회

그런데…. 훈련소에 들어온 지 보름도 안 된 녀석 중에 그런 표정을 짓고 저를 바라보는 녀석이 있었습니다. 바짝 긴장해 있거나 혹은 훈련에 지쳐 병든 닭 마냥 꾸벅꾸벅 졸기 마련인 미사시간 내내 저에게 시선을 고정해 놓고 싱긋이 웃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영성체 때 무리에 섞여 나오는 그 녀석…. 성체안의 예수님을 모신다는 기쁨에 웃는 것이 아니라 제 얼굴을 보며 싱글벙글 하고 있는 겁니다.

고민철. 신부가 되어 처음으로 살게 된 본당에서 복사를 서던 녀석이었습니다. 같은 또래 대여섯 놈들이 있었는데 얼마나 장난들이 심한지…. 어느 날엔가 그놈들 모두를 제대 앞에 꿇려놓고 성당 장의자를 들게 하는 벌을 세웠었지요. 그 선봉에 서 있었던 놈이 빠박으로 머리를 깎고 훈련병들 틈에 끼어 있는 게 아닙니까? 어느새 훌쩍 커버린 그 녀석의 모습이 놀랍고 반갑지만 주변의 시선도 생각을 해야지요. 속마음과 다른 독한 멘트가 튀어나왔습니다.

“어쭈구리. 실실 웃고 있네? 요즘 훈련 헐렁한가 보구만. 좀 심하게 굴리라고 교관들에게 주문해야겠는 걸.” 이 한마디에 영문을 모르는 훈병들은 바짝 긴장해서 자세를 고쳐 잡고 앉으며 “아닙니다.”를 외치는데 그놈만 유독 길게 대답했습니다.

“안 됩니다. 지금도 빡세게 훈련받고 있는데 더 세지면 저희들 죽습니다.” ^^


신부님 마음 알지?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라 하면 눈이 번쩍 뜨인다는데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수단자락 붙들고 어리광 부리고 싶은 그 심정을 빤히 알지만 모든 훈련병들이 똑같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끔 해야 하는 군종 신부입장인지라 그냥 그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사시간에도, 사격장에서도, 행군 중에서도 저를 볼 때 마다 큰 눈을 꿈벅거리며 시선을 고정하는 녀석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했습니다.

다른 녀석들은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궁둥이도 툭툭 쳐대며 격려해주었지만 녀석은 그냥 바라만 보았지요. 빨간 명찰을 달고 가슴을 쑤욱 내밀며 동료들 틈에서 “신부님! 저 백령도로 가게 되었습니다.”라며 신고를 하는 녀석에게 여전히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고생해라.”

예수님께서 군종신부가 되었다면 저처럼 겉 다르고 속 다른 못난 모습은 아니셨겠지요.

가톨릭신문이 군종후원회의 도움으로 백령도에도 흘러갑니다. 아마 민철이도 이 글을 읽게 되겠지요….

“민철아! 신부님 마음 알지?”

김준래 신부(군종교구 충무대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8-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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