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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체험기] 함께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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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이에 따른 광우병 우려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대한민국의 곳곳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매일 밤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온라인 세상인 인터넷에도 연일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내가 살고 있는 전주교구청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교구청 식사 시간의 이야깃거리는 단연 미국산 쇠고기다.

지난 주 어느 날, 교구청 신부님들과 모여 함께 점심식사를 할 때였다. 이날 식탁의 주제 역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신부님이 화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신부님 왈, 오랜만에 헌혈을 하려고 ‘헌혈의 집’을 찾아 갔단다. 그나마도 너무 일찍 도착해서 30분을 기다린 후, 마침내 차례가 왔다. 그런데 헌혈 전 기록하는 종이를 보니 유럽에 1980년 이후로 5년 이상 거주한 사람은 헌혈이 금지된다고 적혀있었다. 규정이 그러니 신부님은 반론도 하지 못한 채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신부님은 “단지 유럽에 잠시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광우병 보균자로 여겨지는 게 기분이 많이 나쁘다”며 울분을 삭이지 못했다.

거기에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거 몰랐어요? 저도 유럽에 있었기 때문에 헌혈 못해요. 그러고 보니 신부님이랑 저는 헌혈은 물론 장기기증도 못해요.”

웃으면서 이 말을 했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단지 유럽에 상주했다는 이유만으로 헌혈이 금지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에 살다온 사람들은 버젓이(?) 헌혈도 하고 장기기증도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신부님께 우리도 촛불문화제에 나가 자유발언이라도 하자고 했다.

나는 요즘 전주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날이면 늘 그곳을 찾아가 사람들과 함께 한다. 붉은 띠를 둘러메고, 마이크를 잡고 언성을 높이기 위함이 아니다. 세상 한가운데로 걸어 나가,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눔의 시간을 갖고, 세상을 느껴보기 위해서다. 막연히 함께 하는 것이 아닌, 실제 내 몸으로 체험하고 싶어서다. 경험하지 않은 것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선, 이웃들이 살아가는 세상 한 가운데로 내가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가만히 앉아 기다린다고 해서 세상의 이웃들이 나를 사랑해 달라며 내게 찾아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혼자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수많은 이웃들을 사랑하기에는 외롭고 힘에 부칠 것 같아, 여러 동기 및 선후배 신부님들과 신자들에게도 문자 메시지를 보내 함께 하자고 독려한다.

2008년 5월. 쇄신을 외치며 끊임없이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는 세상 속에서 우리 교회는 과연 어디에 서 있을까. 그 해답도, 정답도 하나다. 교회가 세상 한 가운데로 들어가, 그 곳에서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거듭나는 길 뿐이다. 우리 교회가 세상 사람들이 모인 곳을 찾아가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늘 함께 했으면 좋겠다.

송년홍 신부 (전주교구 이주사목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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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8-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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