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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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사제가 쓰는 병영일기] 군종신부와 무수리들

하이에나 군종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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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목요일 성 바오로 유치원에서 독거노인 돕기 자선 바자회를 열었습니다. 순대, 떡볶이로 점심도 해결하고 유치원 식구들 격려도 할 겸 나들이를 갔지요. 그런데 잔뜩 쌓아놓은 우리밀 식빵이 제 레이다에 딱 걸린겁니다.

“우와~ 우리 아그들 토스트 만들어 먹이면 딱 좋겠다.”

독거노인 돕기도 좋지만 우리 장병들도 신경 써 달라고 원장 수녀님께 생떼를 부렸습니다. 양손에 하나씩 식빵 토스트를 쥐어주고 싶다고, 300명 정도 주일미사에 나오니까 알아서 제 차에 실어 달라고 했지요. 벼룩의 간을 내어먹어도 유분수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득달같이 성모회장님을 호출했습니다. 그리고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주일 간식거리예요. 계란에 푹 담갔다가 적당히 구워서 설탕 살살 뿌려서 토스트 만들어주면 우리 애들 좋아하겠지요?”

강탈(?)해온 식빵에 놀랐는지 아니면 너무나 듬직한 신부 모습에 감동하셨는지, 잠시 머뭇거리시던 성모회장님은 “걱정 마세요. 저희들이 알아서 할께요”라고 하시는 겁니다.

무수리들의 반란

주일 미사 때 성가 소리가 두 배나 더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 주방에서 풍겨 나오는 고소한 향기에 흥분한 녀석들이 많은 탓이었겠지요. 날씨도 한 몫을 했습니다. 파전 생각이 간절한 부슬비 내리는 날이었거든요.^^

양손에 쥔 토스트를 게눈 감추 듯 처리하고 제 주위를 서성이는 녀석들이 있었습니다. 더 먹고 싶다는 게지요. “뱃속에 거지가 앉았나 보구나”라고 놀리며 몇 개 남은 것까지 몽땅 나눠주었지요. 나는 맛도 못 봤는데…. ㅠㅠ

싱글벙글 주방으로 향했습니다. “우와~! 다음에 또 한번 만들어야겠어요. 너무들 좋아하는데요. 수고하셨습니다.”

이쯤 되면 ‘성당 기둥 뽑히겠어요’라든가 ‘열 번 백 번이라도 만들지요. 많이 벌어오세요~’등등의 응답이 와야 하는데 설거지 소리에 묻혀 들려오는 군시렁거림만 있었습니다. ‘에휴~’, ‘빵집, 분식집’ ‘무수리’ ….

순간 얼굴이 굳어지는 저를 본 눈치 빠른 비비안나씨가 큰 소리로 엄살을 부렸습니다.

“신부님. 다음에는 분식집이나 빵집에서 주문하세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요. 저 계란판 좀 보세요. 계란 값만 해도 어마어마해요. 양계장에서 사온 게 모자라서 아침에 성당 주변에 있는 마트 몇 군데를 더 다녀왔단 말이예요….”

계란판만 해도 열 댓판…. 당황한 성모회장님은 안절부절….

무수리서 하늘나라 여왕으로

한 주간 동안 훈련이다, 작업이다 빡시게 구른 녀석들 애처롭다고, 아무리 요즘 군대 음식 좋아졌다고 하지만 엄마들 손길 닿은 것만 하겠냐고…, 따뜻하게 먹이고 싶다고…, 정성이 담긴 걸 먹이고 싶다고…, 예수님은 멀리 계신 게 아니라 바로 저 녀석들이 예수님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 하는 신부의 말을 따른다는 것, 쉽지 않겠지요. 기껏해야 열 댓명 되는 성모회원들….

그나마도 유치부, 초등학생들 딸린 젊은 엄마들이 절반 이상인데…. 순번을 정해서 한다고 하더라도 매주 주방에 들어가는 게 힘들겠지요. 많은 음식을 해본 경험도 적을텐데 매주 300명 가까운 장병들의 커피 타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닐겝니다.

신앙의 힘으로 봉사를 한다고 하지만 때때로 무수리 신세라는 생각도 스치겠지요. 허나 군인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에, 군 성당에 발목 잡혔기 때문에 무수리가 된 것이 아닙니다.

주일 마다 묵묵히 앞치마를 두르는 이유는 시커먼 얼굴의 장병들이 임금이신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삶이 끝나는 날 예수님으로부터 ‘내 형제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는 말씀을 듣게 되리라는 확신이 있기에 스스로 무수리가 된 것입니다.

그날 우리 무수리들의 행적을 낱낱이 알고 있는 천사들이 앞치마 대신 흰 예복, 하늘나라 여왕들에게 어울릴 옷을 내놓을 겝니다.

김준래 신부(군종교구 충무대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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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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