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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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군종신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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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살이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 때는 바로 명절 때가 아닐까 한다. 남들은 가족들과 함께, 부모 형제가 전부 모일 때 어디 갈 데가 없다는 것은 무척이나 버텨내기 어렵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 생활을 하는 병사들도 마찬가지다. 그 명절에 철책선에서 산과 바다에서, 하늘에서 그리고 도심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뿌듯하면서도 뭔가 허전함을 느끼는 시간일 것이다. 이런 시간을 보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더 많이 배우고 점점 어른으로 성숙해간다고 본다.
 수도 서울을 지키는 부대에서 근무할 때였다. 나는 시골 출신이라 서울 지리를 잘 몰랐다. 당시엔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라 어디를 찾아간다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평상시 서울에서 어딜 가다가 길을 깜빡 놓치면 30분에서 한 시간은 그냥 지나가 버렸다. 그러니 꼭 나가야 할 일이 아니면 움직이기가 싫었다.
 추석 명절 때였다. 부대원들이 한강 큰 다리들과 주요 곳곳에서 수도방위를 위해 근무하고 있었다. 명절에 집에도 못 가는 그들을 방문하고 위로하고 싶었다. 평상시에는 교통량이 워낙 많아서 자주 못 갔지만, 명절 때만이라도 꼭 가고 싶었다.
 서울에 차량이 많이 빠져나가 시내 교통량은 거의 없었고, 짧은 시간에 많은 곳에 갈 수가 있었다. 위문품으로 먹을거리를 잔뜩 싸들고 나섰다. 나도 고향에 못 가기는 마찬가지였다.
 16년이 넘는 군종신부 생활 중 딱 한번 추석 때 고향에서 부모 형제들과 함께 지내봤을 뿐이다. 집에 가지 못하는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운전병과 나는 사전에 계획을 세웠다. 효율적으로 방문하기 위해서다. 다리 위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을 만나니 참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선 차량 소음이 장난이 아니었고, 젊은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넓은 장소가 없었다. 좁은 땅에 억지로 족구 정도만 할 수 있게 해놓고 있었다. 근무는 힘들더라도 신나게 뛸 수 있는 장소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높은 건물 위에서 근무하고 있는 병사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브리핑을 받고 근무환경을 둘러보았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으니, 내가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잠깐 위로의 말을 하고 먹을거리를 내놓았다.
 건물 꼭대기에 있으니 운동할 장소는 아예 없었다. 심한 경우는 휴가 때를 제외하고는 아예 땅을 밟아보지 못하는 병사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2년 세월을 국민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젊은이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뒤에서 "신부님! 다음에 또 오세요!"하는 것이 아닌가! 뒤를 돌아 손을 흔드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뭐 그리 잘해준 것도 없는데 말이다.
 다음에는 더 잘해줄 것을 다짐하면서 그곳을 떠나왔다. 마음만은 병사들에게 남겨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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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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