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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체험기] “아이고 마 늙었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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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나선 거리에서 로사 할머님을 뵈었다. 신호등 건너편에 발갛게 고운 옷을 입은 그분은 내게 손짓을 하며 거기 그냥 있으라고 했고 나는 기대에 부풀어 기다렸다. 뭐라고 인사를 할까? 나를 알아보시니 얼마나 감사한가. 옷이 참 곱다고 말해드려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뛰다시피 길을 건너온 할머님은 내 손을 잡고 고개를 드시더니 대뜸 한다는 말씀. “아이고 신부님, 우야꼬… 마. 늙어버렸네.”

‘아니, 늙었다니…. 흰 머리칼이 100개쯤 밖에 안 된다던데? 그것도 블리치를 넣은 셈 치면 봐줄 만한데. 피부야 뭐 그렇다 치고…. 그래, 그러고 보니 할매도 만만치 않구먼.’ 속으로야 이런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마음을 고쳐먹고 반성하는 말로 대답해드렸다. “네…. 죄송합니다. 건강을 잘 돌보지 못해서요. 하지만 걱정해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할머님은 하나도 늙지 않았어요!” 그제야 그 할머님은 조금 미안한 듯, 19년 전 보좌신부 시절 함께했던 시간들을 회상하며 그래도 멋있어 보인다고 내내 기도한다며 길을 가셨다.

고의적으로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표현도 있지만 의도하지 않고 무심코 하는 말들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거나 부정적인 느낌에 빠지게도 하는데 그 가운데는 칭찬의 말도 서로 다르게 영향을 미치곤 한다. 교우들은 어디 강연이나 피정을 다녀오면 그 내용이 좋았고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런 표현들은 미소를 머금은채 듣기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 그 신부님은 강론을 정말 잘 하시던데요?” - 그럼 내 강론은 별로라는 말인가?

“말씀하시는데 정말 한번도 졸지 않고 들었어요!” - 그럼 내 강의는 졸린다는 말인가?

“아 그 신부님 정말 잘 생겼어요!” - 아니, 그럼 나는…? 본당 옮기지요?

혹시, 이런 표현을 보고 덩치는 큰 신부가 밴댕이속 같이 좁고 옹졸한 사람이라고 말하실 지도 모르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그랬다. 그리고 사람은 사실, 이처럼 섬세하고 배타적인 모습을 고려해볼 필요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칭찬을 하는 것도 참 좋은 사랑의 표현법이지만 이왕이면 “우리 신부님보다는 못하지만 - 참 그 분 강론도 좋던데요?”라고 했다면 아마 나는 그해 우리 본당 대림절 특강 초청강사로 그 신부님을 모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누구나 인정받고 존중받고(!)싶은 마음은 다르지 않을 텐데 그런 자존감을 조금이라도 고려한다면 더 좋은 대화가 되었을 것이다.

부부를 위한 ME의 다양한 프로그램들 가운데는 ‘사랑의 언어’라는 과정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서로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우선 내 자신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기를 다짐한 상대방이 어떻게 하면 사랑으로 충만해지는가를 여러 가지로 알아가는 시간들로 준비되어있다.

그냥 편하게 하는 대화도 사랑의 표현방법이지만 조금 더 잘 준비된 대화라면 그 사랑을 더욱 풍요롭게 나눠주는 사랑의 대화로 성장 시켜주실 것이다.

이성구 신부 (대구 소화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8-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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