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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사제가 쓰는 병영일기] 뵙고 싶었습니다

군종신부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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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관 후 군종신부로서 활동을 시작한지 석 달쯤 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그동안 선배 신부님들께서 군종신부로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시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덕분에 내가 접하고 있는 새로운 환경에 조금씩 익숙해져가고 있었습니다.

석 달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제는 주위를 좀 둘러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그러면서‘군인 신자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좀 더 할 수 있을까?’,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 보내신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더 바라시는 걸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군종신부가 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 중에 하나가 병사들을 찾아가 위문하는 일입니다. 군복무를 하면서 고생하지 않는 군인들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북쪽만 바라보며 철책근무를 하는 병사들, 땅굴탐지를 하는 병사들은 그야말로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기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찾아봐야 합니다.

한번은 사단에서 함께 근무하는 불교 법사, 개신교 목사, 원불교 교무, 천주교 신부, 이렇게 네 사람의 군종장교가 전방의 한 초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묵주·십자가 선물

우리가 찾아갔을 때, 전날 야간 근무를 서고 취침중인 병사들을 제외한 약 20여명의 장병들이 군종장교들을 반겼습니다. 우리는 장병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들의 고충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기도 하고, 준비해간 간식도 나눠줬습니다. 신자들에게는 묵주와 십자가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 중에는 마침 천주교 신자 두 명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작별인사를 할 때였습니다. 신자인 한 병사가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뵙고 싶었습니다.”

그저 나를, 아니 신부님을 뵙고 싶었다는 이 한마디 말 속에 많은 의미가 들어있음을 어찌 알아차리지 못하겠습니까.

사실 군 복무중인 병사들은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있는 외로움과 싸워야 하고, 늘 함께 있으면서도 때로는 야속하게 다가오는 전우들에 대한 서운함을 감내하고, 몇 달을 철책과 북녘 땅만 바라봐야 하는 무료함을 견뎌내야 합니다. 또한 미사 참례를 하고 싶어도 갈 수 없고, 신부님을 한 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시간을 참아야만 합니다.

하느님의 위로

이런 상황 속에서, 하느님의 위로를 받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뵙고 싶었습니다.”라는 한마디로 모두 담아낸 것입니다. 그 의미를 누가 알아차리지 못하겠습니까.

그 병사의 마음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혼자서라도 미리 한번 찾아오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한마디 속에서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큰 나무를 뿌리째 바다에 심게 될 큰 믿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은 내가 군종사제로서 해야 할 일, 하느님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것을 발견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저 사제로서의 내 모습을 장병들에게 한번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겨자씨만한 믿음을 큰 나무와 같은 믿음으로 키워갈 수 있다면 못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신부님을 한번 바라보는 것만으로 하느님의 위로받을 수 있다는데 한 번 더 찾아가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작은 관심과 사랑

2년 간의 복무기간은 자칫 시간만 허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이 기간을 아무런 의미 없는 시간으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 병사들과 그 시간을 함께 하시면서, 그저 신부님을 한 번 보고 싶어 하는 아주 작은 믿음을 통해 큰 결실을 거두신다는 사실을 전방의 한 초소에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병사들에게 보여주는 작은 관심이 하느님의 위로가 되고 하느님을 향한 큰 믿음이 될 것인데,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겠습니까?

이종민 신부(군종교구 열쇠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8-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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