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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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체험기] 현이와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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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이곳은 한센인 생활시설 ‘다미안의 집’과 지적 장애인 생활시설 ‘보름동산’이 이웃해 있다. 두 시설 중 나는 보름동산의 원장직을 맡고 있다. 보름동산은 작년 이맘때 개원하였고, 약 25명의 아동이 거주한다. ‘보름동산’이라는 이름은 이 동네의 옛 이름 ‘보름골’에서 착안했고, 보름달처럼 환하고 풍요로운 곳으로 가꾸자는 의미를 덧붙일 수 있겠다. 오늘은 보름동산에 처음으로 입소한 ‘현이’(가명)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현이는 해맑은 웃음을 지닌 귀엽고 잘생긴 아동(중1)이다. 아버지는 몇 해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나시고 어머니는 그렇고 그런 사정으로 삼촌이 맡아 돌보던 중 감당하기 어렵겠다는 판단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현이가 말도 못하고 시무룩하였는데 점차 이곳에 적응되고 마음이 편해지면서 본래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멀찍이 아는 사람이 보이면 큰 소리로 부르며 달려와 얼굴을 파묻고 안길 정도로 활달한 아이였던 것이다. 어쩌면 만만한 사람에게 그동안 못 받았던 귀여움을 받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나이에 비해 어리광이 많다는 점, 학습능력이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라는 점, ‘원장님’을 ‘원당님’에 가깝게 발음한다는 점 등을 빼놓고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어떻게든 현이가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우리말 실력과 산수능력을 키워야겠는데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의 정규과정 안에서는 그것을 기대하기 힘들 것 같아서, ‘누군가 장기적으로 개인학습을 맡아줄 분이 계시면 좋을 텐데…’ 하며 기다리고 있던 중, 꼭 맞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후원자를 통해 소개받은 자매님인데 본인도 오래전부터 그런 아이를 위해 봉사하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직업이 과외 선생님이시니 더욱 잘 된 일이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뭔가 통했나 보다. 그 자매님에게도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몇 년 전 현이와 비슷한 또래, 비슷한 장애를 가진 아들을 잃었던 것이다. 현이와 너무 자주 만나면 떨쳐버리려고 했던 아들 생각이 날 것 같다며 일주일에 한 번만 만나서 공부하자고 했다. 혹시 현이는 자매님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했는데 첫 만남부터 낯가림 없이 대하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니 다행이다. 이제는 학습지도 받을 날이 되면 마당에서 미리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으니 선생님한테 푹 빠진 것 같다. 학급 담임선생님 말에 의하면, 현이가 만들기 작업을 할 때 주로 사람모양을 반복적으로 만든다는데, 마음속으로 그렇게 그리운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빈자리를 학습지도 선생님이 적당히 채워주면 좋겠다. 그래서 자매님께 현이의 ‘이모’가 되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냥 편한 이모, 현이의 앞날을 관심 있게 지켜봐줄 이모 정도면 좋을 듯하다.

비단 현이 뿐만 아니라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장기적으로 관심과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또 다른 ‘짝’이 되어줄 사람이 그때그때 하늘에서 떨어지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드린다.

이형철 신부 (안동교구 사회복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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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8-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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