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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사제가 쓰는 병영일기] 선교의 황금어장, 양?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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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군생활 도우려 세례 주지만
제대하면서 성당 발길 끊는 이 많아

초코파이를 맛있게 먹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군대에서 먹으면 됩니다.

천주교의 세례를 가장 쉽게 받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군대에서 받으면 됩니다.

군대의 모든 훈련은 실제 전투상황을 가정하고 실시합니다.

군대에서 교리가 모자라더라도 쉽게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이유도 그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전투를 앞두고 있는 한 병사가 찾아와서 “신부님, 지금 전투에 투입되면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지금부터라도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세례를 주십시오!”라고 청한다면 세례를 주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훈련병들의 처지를 그런 상황과 비슷하게 준전투상황으로 봐 주는 겁니다.

그리고 교리가 좀 모자라더라도 쉽게 세례를 줘 버립니다. 부모님과 가족들, 친구들을 떠나와서 낯선 환경 속에 적응하고 생전 처음 군사훈련을 접하는 젊은이들이 예수님을 알고 신앙을 알고 기도를 할 수 있다면 그 또한 그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훈련병 시절 군대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 중에서 제대 후 사제의 길을 걷게 된 선후배 신부님들도 있습니다. 그 신부님들에게는 군대에서 받은 세례성사가 신앙의 큰 체험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현상도 있습니다. 훈련병시절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다가도 제대와 동시에 성당도 제대해 버리는 경우입니다. 더 심한 경우는 “나는 군 생활 중에 천주교, 불교, 개신교 세 가지 종교를 다 마스터 하겠다”라는 장난스러운 마음가짐으로 세례를 받는 경우입니다.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교회에 가서 또 세례를 받고, 법당에 가서 수계를 받는 것입니다.

이렇다보니, 군대에서 세례를 받으면, 냉담하게 되더라도 반드시 돌아올 것 이라는 막연한 기대만으로 세례를 준다는 것을 제 마음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단 신병교육대에서는 파견 나온 군종선교사님의 열정적인 교리를 통해 세례를 받는 훈련병들이 예년에 비해 점차 늘어나는 추세에 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세례를 받고자 찾아오는 이 훈련병들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세례를 주고 싶은 마음이 반, 주기 싫은 마음이 반입니다.

부모님과 가족들, 친구들을 떠나 힘든 훈련 중에 있는 훈련병들을 보면 세례를 주고 싶다가도 혹시 이 녀석들 중에 장난삼아 여기 앉아있는 사람이 있는건 아닌지 하는 의심스러운 마음에 세례를 주기가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한 시간 찰고시간을 통해 부모님이 신자이신지, 친지들 중에 신자가 있는지, 친구들 중에 신자가 있는지, 일일이 확인을 하고 짧은 시간이나마 교회와 성사에 대해 마지막 교리를 하고, 제대와 동시에 성당을 제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다짐을 받은 다음에 세례를 줍니다.

그러는 사이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훈련병들 중에는 스스로 “이런이런 이유로 다음에 세례를 받겠습니다”라고 세례를 보류하는 친구들도 생깁니다. 그러면 저는 다음에 준비가 되면 분명히 하느님께서 다시 부르실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군대생활 잘 하라는 격려의 말과 함께 다음 기회에 꼭 성당으로 나오라고 말해주고는 자리로 돌려보냅니다.

군 선교, 선교의 황금어장, 과연 그 양은 많지만, 군대라는 상황 안에서 질적인 향상을 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군사목을 시작하고 이제 일 년이 지나 이 년째이지만, 아직도 제 마음은 반반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서 군대에서 세례를 받으신 분이 계시다면, 저의 이런 걱정이 그저 기우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종민 신부(군종교구 열쇠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8-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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