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8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사목체험기] 신부님은 왜?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사회복지 소임을 맡으면서 더러 ‘바쁘다’는 생각이 들지만 본당에서 사목할 때 가졌던 부담 하나는 줄었다.

본당에 있으면 쉬는 교우 방문뿐만 아니라 예비신자를 모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래서 비신자들을 만나면 의무감에서라도 “성당에 한 번 나오세요”했는데 여기서는 애써 그렇게 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임무 태만으로 볼 수 있지만, ‘삶의 선교’라는 명분이 있지 않은가.

“신부님은 왜 성당 다니라는 말 안하세요?” 신자가 아닌 직원이 툭 내뱉은 말이다. 근처의 본당 신부님이 그 직원을 볼 때마다 ‘성당에 나오라’ 권했던 모양이다. 어떻든 가톨릭에 호감이 있다는 뜻이고, 내가 살짝만 더 당겨주면 될 듯한데, “그 말 하고 싶어도 안 한다”고 했다. 물론 농담이 절반이지만 담긴 뜻은 있다. 본인 스스로 내켜서 발을 내딛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직급상 상하관계에 있는 상황에서 쉽게 던질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가톨릭 시설 종사자 모임에서 비신자들이 제기하는 불만 중에는 “종교를 강요한다”는 말이 꼭 등장한다. 시설의 장으로 있는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이 그렇게 무식하게 종교를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 보는데, 다른 것에서 느끼는 불만까지 얹어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어떻든 가톨릭 시설에 종사하는 비신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성당에 다니라’는 권고보다 뭔가 다른 삶의 양식, 가톨릭이 추구하는 이상적 가치를 몸소 실천하는 것이라고 본다. 다행히 내가 권하지 않더라도 몇몇 직원들이 가까운 성당의 예비자 교리반에 등록하여 잘 다니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 가지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다.

사회복지시설에 입소할 때 입소자 본인, 혹은 보호자와의 협약 중에는 종교적 활동에 동의한다는 게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시설에 입소한 아동의 어머니가 찾아와서, “전에는 미처 몰랐다”며 두 가지 요구를 했다. “우리 아이는 미사 드릴 때 좀 빼주세요” 하는 것과 “우리 아이가 순대와 선지국은 안 먹도록 했으면 좋겠는데….” 알고 보니 어머니가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좀 황당한 요구지만 “다른 시설 알아보라” 할 수도 없고, 생각해보니 전혀 못 들어줄 내용도 아닌 듯하여, 최대한 부모님의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다 반영될지 의문이지만 말이다.

이런 경우를 접하다 보니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된다. 앞으로 이곳에 거주하는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미사를 함께 봉헌할 계획인데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본인, 혹은 부모님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을까? 별 거부감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 문제에 대해 더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려 한다.

혹 어느 부모님이 또다시 “우리 아이는 빼주세요” 한다거나, 거주 아동 스스로 “싫다” 한다면, “알았다”고 말할 준비를 갖춰야겠다. “가톨릭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 보다는 적어도 가톨릭은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기고 싶다.

이형철 신부 (안동교구 사회복지회 사무국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8-09-07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9. 28

마태 3장 15절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