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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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평화] 강원도 산골 ''감자맛'' 보러 오세요~

홍천 내면본당 교우 농산물 전단지, 신자 사랑도 가득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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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영일 신부(오른쪽)가 오늘은 김진훈(야고보)씨 감자밭에서 `사목`을 한다.
내면본당 신자들은 "농산물 전단지 덕분에 요즘 돈을 만진다"며 좋아하고 있다.
 


   강원도 홍천군 내면 가는 길.

 초가을 따가운 햇살에 곡식이 익어간다. 하늘은 벌써 쪽빛이다.
 손에 들려 있는 전단지는 보면 볼수록 마음이 끌린다. `내면성당 교우들이 생산하는 먹거리`라고 적혀 있는 전단지에는 첩첩산중 신자들이 땀흘려 재배한 농산물 품목과 주문처가 가지런히 나열돼 있다.

 마음을 끄는 것은 탐스러워 보이는 농산물 사진이 아니라 전단지에 담긴 내면본당 용영일 신부의 사랑이다.

 "신자들이 땡볕에서 허리 펴 볼 틈도 없이 일해도 빚더미에서 벗어나질 못한다"며 가슴 아파하더니 아예 전단지를 만들어 농산물 중개업자(?)로 나선 모양이다.

 # 피땀 어린 농산물 갈아엎는 것 가슴 아파
 "아~ 그 전단지요? 동생이 홍보 전단지를 제작한다기에 우리 본당 신자들 이름 좀 넣어 달라고 졸랐어요. 여기저기서 주문이 꽤 들어와요."

 용 신부 남동생은 홍천 읍내에서 제법 규모를 갖추고 감자떡 장사를 하는데, 전단지 주객(主客)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감자떡 홍보코너는 뒤로 밀리고 내면본당 신자들 농산물과 연락처가 눈에 잘 띄는 지면을 다 차지했다. 용 신부는 "우리 신자들이 더 살기 힘든데 그 정도는…"하며 두루뭉술 넘어간 것 같다.

 "여름 내내 땀흘려 키웠는데도 `가격이 없어` 갈아엎는 걸 여러 번 봤어요. 제값을 못받으면 인건비는 고사하고 씨앗값과 농기계 임대료가 모두 빚으로 쌓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집집마다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빚이 걸려 있어요."


 
▲ `내면성당 교우들이 생산하는 먹거리` 전단지
 

 도시 신자들 반응이 무척 좋다. `하느님은 농부이십이다`(요한 15,1)로 시작되는 전단지 인사말과 농부들의 이름과 세례명, 전화번호에 믿음이 가는 모양이다. 무농약 유기농 농산물에는 인증번호도 붙어있다. 감자ㆍ옥수수ㆍ토마토ㆍ오이ㆍ단호박ㆍ풋고추ㆍ생채 등이 이 지역 고랭지 특산물이다. 요즘은 택배 서비스가 워낙 좋아 주문 다음날이면 서울에서 받아볼 수 있다.

 용 신부는 "신자들과 트럭에 감자를 잔뜩 싣고 서울 성당에 올라가 판매하는 방법은 일회성에 그칠 수밖에 없다"며 "소비자들과 내면 신자들간에 1:1 거래를 성사시켜 쉽게 끊어지지 않는 관계를 맺어주려고 전단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감자 농사를 짓는 김문규(가브리엘)씨는 "신자들 어려움을 덜어주려고 애쓰는 신부님 마음이 고마울 따름"이라며 "이 지역에서 유기농이나 저농약 농사는 천주교인들이 먼저 나서서 시작했기에 품질은 100 믿어도 된다"고 말했다.


 # 용 신부 강론은 자장가?
 용 신부는 농부 마음을 너무 잘 안다. 2년 반 전 본당에 부임하자마자 "농부들 성당에 왔으면 농심(農心)을 알아야 한다"며 밭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어쩌다 신자들 만나러 밭에 나가는 농사체험 수준이 아니다.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으레 농기구를 챙겨 밭에 나간다. 농사도 거들고, 사목방문도 하고, 선교와 상담도 하고, 그야말로 `1석4조` 사목활동이다. 이 때문에 얼굴이 새카맣게 그을렀다. 사제복을 벗으면 영락없는 산골 농사꾼이다.

 그의 사목방문에는 우선순위가 매겨져 있다. 품을 살 형편이 안 돼 노부부 둘이 왼종일 쪼그려 앉아 김을 매거나 일손이 더 많이 필요한 유기농 밭이 항상 1순위다.

 그는 이번 여름에도 평일 저녁미사에서 강론을 몇 번이나 길게 끌었다.
 하루종일 밭에서 일하다 허겁지겁 저녁 챙겨먹고 달려와 앉아 있는 신자들에게 강론은 자장가나 다름 없다. 그는 신자들이 너나할 것 없이 꾸벅꾸벅 졸면 단 몇 분이라도 눈을 더 붙이라고 일부러 강론을 `엿가락 늘리듯` 길게 한다. 그만의 애틋한 신자 사랑법이다.

 내면본당은 내년 봄에 50년 된 낡은 성당을 헐고 새 성당을 짓는다. 바닥에 대리석을 깔지 않아 농부들이 흙발로 들어서도 편안한 성당, 도시생활에 지친 방문객에게는 하느님 품처럼 평화로운 성당을 짓는 게 꿈이다. 내면본당: 033-432-0974(naemyun.diocc.or.kr)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가톨릭평화신문  2008-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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